매일신문

[야고부] 항일승전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한 것은 1945년 8월 15일 낮 12시였다. 일본은 같은 해 5월 8일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나서 석 달 하고도 일주일을 더 버텼다. 일왕이 항복했다 하여 전쟁이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9월 2일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국 전함 USS 미주리 선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정식 서명함으로써 공식 종결됐다.

일제가 지긋지긋했던 한국은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삼았다. 중국과 대만은 항복 문서 조인 다음 날인 9월 3일을 항일승리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중국은 9월 3일을 항일승전일이라 기념하지만 애초 승전국 명단에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없었다. 중국의 탄생은 이보다 4년여가 지난 1949년 10월의 일이었다. 전승국 명단엔 장제스가 이끌던 중화민국이 올라 있었다.

비록 전승국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더 화려하게 항일승전을 기념하는 곳은 대만이 아닌 중국이다. 이는 전후 70년 만에 명실상부하게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한 국력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9월 3일 여는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을 코앞에 두고 대일 총공세를 펴고 있다. 27일에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에서 구축함과 전투기 등을 총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 언론은 "일왕(히로히토)은 죽을 때까지 피해국과 그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한 적이 없으니 그 왕위 계승자(아키히토 일왕)라도 사죄하고 뉘우쳐야 한다"며 일왕을 향해 화살을 돌렸다. 일본인들이 금기시하는 일왕을 건드린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반대를 무릅쓰고 평화헌법 개헌과 안보 법안의 국회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에만 도움이 된다면 중국과의 적당한 마찰로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이다.

시진핑의 중국 역시 아베의 이런 속셈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중국이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일 공세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무장할 테면 해보라'는 메시지다. 여기에는 더 이상 중국이 과거 일본군에 당했던 그런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여차하면 대국으로 구겼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나라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만 대하면 한없이 움츠러드는 우리나라 정부가 한심해 보일 때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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