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팅의 달인이라고 하면 누가 먼저 생각나는가. 한국 사람이라면 LPGA를 평정하고 있는 박인비 선수를 생각할 것이다. 포효하는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 모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나 박인비 선수는 명함도 못 내미는 퍼팅의 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빌리 캐스퍼이다.
'아놀드 파머-잭 니클라우스-게리 플레이어' 등 전무후무할 것 같은 위대한 선수들이 경쟁하던 1960년대, 빌리 캐스퍼는 1960년대 이들과 경쟁하며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최고의 골퍼였지만 저평가된 선수이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PGA 투어에서 위 3명이 가져간 승수가 35승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5년간 빌리 캐스퍼가 가져간 승수가 23승이다. 앞뒤로 5년씩 더해 20년간 그가 가져간 총 승수는 51승이나 된다. 그러나 빌리 캐스퍼가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크게 회자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스타성 부족이다.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않았고, 언론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저 골프와 종교, 가정밖에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의 종교는 유타주가 본고장인 모르몬교였다.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대중들은 그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빌리 캐스퍼는 3명의 경쟁자에 밀렸다. 그런 캐스퍼는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선호하는 상품이 아니었다. 뛰어난 실력, 특히 퍼팅에는 귀신같은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그는 대중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얼마나 퍼팅 능력이 뛰어났는지 빌리 캐스퍼는 절대 모험적인 샷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그린 위에만 공을 올리면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스타가 되기엔 부족한 원인 중의 하나다. 공격지향적인 선수가 방어적인 선수보다는 훨씬 돋보이기 때문이다.
1966년 샌프란시스코 올림픽 클럽(Olympic Club)에서 열린 US 오픈 최종일에 아놀드 파머와 우승컵을 놓고 겨룰 때의 일이다. 당시 아놀드 파머는 9홀을 남겨두고 빌리 캐스퍼보다 무려 7타를 앞섰다. 그러나 후반 들어 아놀드 파머는 흔들렸고, 빌리 캐스퍼는 조용히 따라잡아 동타를 이루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도 아놀드 파머는 2타를 앞서고 있었지만, 빌리 캐스퍼가 11m 버디 퍼트와 12m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아놀드 파머를 압박했고, 급기야 아놀드 파머는 보기 2개와 더블보기를 범하며 4타차로 빌리 캐스퍼에게 우승컵을 내줘야만 했다.
빌리 캐스퍼는 절대 흥분하지 않는 선수였다고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용히 앞으로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롱 퍼팅이 안 들어가 화가 날 상황임에도 절대 표현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짧은 거리의 숏 퍼팅을 강하게 쳐서 공이 홀의 뒷벽을 맞고 한 번 튕겨 올라간 후 들어가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퍼팅을 실수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만큼 퍼팅에 관해서는 정말 자신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골프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위대한 골퍼, 빌리 캐스퍼. 퍼트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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