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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바다' 메르 더 그라스 빙하 둑길

얼음의 바다 메르 더 그라스를 줄곧 앞에 두고 걷는다.(사진 왼쪽) 메르 더 그라스 둑길은 가파른 철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구간이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다.
얼음의 바다 메르 더 그라스를 줄곧 앞에 두고 걷는다.(사진 왼쪽) 메르 더 그라스 둑길은 가파른 철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구간이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다.

수백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빙하가 악마들의 거처라 여겨 다가가기조차 주저했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차츰 세력을 잃어가는 빙하가 현대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난 놀이터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이 산정 저 산정의 얼음덩어리들이 모이고 뭉친 빙하는 거대한 여세로 여전히 웅장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나 많은 모레인(빙하에 의하여 운반, 퇴적되는 물질의 총칭) 언덕과 바위들을 등에 얹고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빙하가 필자의 눈에는 예년에 비해 힘겨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하의 비대해진 몸무게에 의해 생긴 수많은 균열들, 즉 온갖 형태의 크레바스들은 수십 혹은 수백m 깊이의 암흑 함정으로 간혹 알피니스트들을 집어삼키기도 하는 등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바로 그 빙하를 옆에 두고 걸어볼 생각이다.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이 위치한 몽블랑 산군에서 가장 길고 웅장하게 흘러내리는 빙하가 있다. 메르 더 그라스(Mer de Glace)이다. '얼음의 바다'라는 이름의 이 빙하를 줄곧 지켜보며 걷는 길이 있다. 이 코스는 산악열차로 오르는 몽땅베르(le Monten vers'1,909m) 언덕에서 시작해 빙하 좌측 둑길로 올라 렛쇼 빙하 언저리까지 오른 후, 빙하로 내려서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몽블랑 산군의 중심부를 둘러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중에 산장도 두 군데 있어 시간 여유를 가지고 산행하면 알프스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이 코스는 이전에 소개한 트레킹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가파른 절벽에 설치된 꽤 긴 철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노약자나 어린이와 산행을 할 경우에는 경험자와 동행하고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톱니바퀴가 달린 산악열차로 샤모니에서 30분 만에 몽땅베르 전망대에 오르면 '빙하의 바다' 좌우로 화강암 침봉들이 도열해 있다. 곤돌라를 이용해 바로 빙하에 내려선다. 관광객을 위해 각종 얼음조각상을 설치해둔 빙하동굴을 잠시 둘러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모레인 지대의 큰 돌을 오르내리며 메르 더 그라스 끝자락을 건너 절벽 위로 이어지는 철사다리 아래에 닿는다. 멀리서 보면 사다리 옆 바위에 붉은색 페인트칠을 해두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파른 절벽에 설치된 사다리라 조심해야 한다. 100여m 이상 이어진 철사다리는 아찔할 정도로 고도감이 느껴지지만, 오를수록 트이는 이색적인 전망이 두려움을 잠시 잊게 만든다.

철사다리를 다 올라 작은 오르막을 오르면 이제 길은 완만하게 메르 더 그라스 좌측 둑길로 나 있다. 풀밭 길을 쉼 없이 오르내리다가 모퉁이 하나를 돌면 빙하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레 브랑쉬 설원에서 시작해 렛쇼 빙하 언저리에서 크게 방향을 틀어 샤모니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빙하를 보면 빙하의 바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렇게 완만한 경사의 빙하는 1년에 약 100m 이동한다. 한여름에는 빙하 위에 갖가지 크기의 바위와 돌들이 얹혀 있어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곧이어 샤르푸아 빙하 아래다. 너덜지대를 지나 개울을 가로지르면 부근에 민들레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곧 샤르푸아 산장(2,841m)과 쿠베르클 산장(2,687m)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한 시간이면 샤르푸아 산장이다. 여름철에만 산장지기가 거주하는 이 자그마한 산장에서는 일몰의 풍경 속에만 있어도 여기까지 온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 이 산장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쿠베르클 산장으로 가도 좋다.

갈림길에서 곧장 쿠베르클 산장으로 향한다. 한동안 경사진 풀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작은 개울을 지나면 또 철사다리다. 조심해서 오르면 전망 좋은 언덕이 나타난다. 식수를 구할 수 있고 몽블랑 산군의 수많은 침봉들과 빙하가 한눈에 보여 캠핑하기에 좋은 장소다. 길은 가파른 바위길을 오르내리며 이어지고 고도감이 큰 철사다리도 지난다. 빙하는 오른편 발아래에 둔다. 간혹 철사다리가 낙석에 무참히 망가져 있기도 하다. 인간의 힘이 대자연에 무력해진 모습이지만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듯 매년 초여름이면 새롭게 보수되곤 한다. 이제 빙하를 더 가까이 보며 걷는다. 아이들까지 동반한 부부들도 만날 수 있는데, 다소 위험한 곳이라 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가까이하고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익숙하다. 가파른 바위길 하나를 오르면 쿠베르클 산장이 보이는 언덕이다. 케른(돌무더기탑)이 보기 좋게 쌓여 있다. 그 너머로 그랑드 조라스와 몽블랑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여기서 수평으로 난 길을 10분 정도 가면 산장이 나오고 몽땅베르에서 4시간 걸린다. 하산은 산장 아래 탈레프르 빙하 둑길을 따라 내려가 가파른 절벽에 설치된 철사다리를 100m 이상 내려가면 메르 더 그라스에 닿는다. 빙하를 따라 줄곧 하산하면 몽땅베르 전망대다. 서둘러 하산할 경우 두 시간이면 되기에, 첫차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면 하루 일정으로 좋은 트레킹 코스이다. 하지만 하루 정도 시간을 더 내어 알프스에서 가장 멋진 산장 중 하나인 쿠베르클 산장에서 밤 정취에 취해보기를 바란다.

몽땅베르 전망대는 제네바에서 한 시간 거리인 샤모니 기차역 뒤편의 몽땅베르 역에서 산악열차를 타면 된다. 메르 더 그라스 빙하 둑길을 당일로 산행하려면 사전정보를 충분히 습득해야 하니 시간 여유를 가지고 산장에서 묵으며 산행하는 편이 좋다. 2,800m 높이에 위치한 샤르푸아 산장에서 내려다보는 메르 더 그라스의 웅장함과 몽블랑 산군의 속내를 파노라마로 지켜볼 수 있는 쿠베르클 산장에서의 풍광이 좋다. 샤르푸아 산장(전화:0624864439)은 7'8월, 쿠베르클 산장(전화:0450531694)은 6월 중순~9월 중순까지 산장지기가 거주한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예약 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산장 이용료는 조'석식 포함 1박에 약 55유로이다. 체력에 자신이 있으면 캠핑도 가능하다. 산장 주변이나 몇몇 전망 좋은 언덕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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