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다양한 중남미가 진정한 블루오션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한국외국어대 졸업(스페인어 전공).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한국에서 세계 6개 대륙 중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가장 억울한(?) 대륙은 아마도 라틴아메리카로도 불리는 중남미가 아닐까 한다. 교육계, 언론계의 제법 배웠다고 하는 전문지식인 중에도 중미와 남미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는 젊은 시절 많이 본 마카로니 서부 영화에 나오는 120년 전 선인장 가득한 멕시코 북쪽 끝 사막 지대의 활개치는 악당들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있기 다반사다. 그래서 중남미 33개국 중 어느 한 나라에서 무슨 사건이 나면 서슴지 않고 '중남미는 어떠어떠하다'라고 하며 나머지 32개국은 그냥 도매금으로 나쁜 나라가 되어버리고 만다.

얼마 전 태국 방콕에서 일어난 테러 뉴스로 온 세계가 놀랐는데, 그러니 같은 아시아에 속한 한국도 위험하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멕시코의 미국 국경도시 티화나는 LA에서 차로 3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 도시 우유아이아까지는 비행기로 쉬지 않고 날아가도 15시간은 족히 걸린다. 흔히 중남미 하면 정치, 경제적으로 후진국이고, 군사 쿠데타가 빈발하고, 문화라는 것이 별로 없는 곳이라고 쉽게 연상한다. 하지만 거기엔 아르헨티나처럼 남한의 30배 가까운 영토를 가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또 남한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가 있고, 과테말라처럼 인디오가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칠레나 우루과이같이 인구 대부분이 백인인 나라도 있다. 멕시코나 칠레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훌쩍 넘긴 곳이 있는 반면에 중미 몇몇 나라처럼 불과 몇 천달러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도 있다.

정치 상황도 각양각색이다. 파라과이에서는 한 사람이 30년 이상을 계속 통치한 적이 있었던 반면 코스타리카는 최근 60년간 정확히 4년마다 대통령이 교체되어 왔으며, 쿠바와 같이 공산 독재 국가가 있는가 하면 칠레처럼 우익 독재를 경험한 국가가 있기도 하다. 서울보다 인구 10만 명당 연간 살인사건 발생률이 낮은 칠레 산티아고처럼 안전한 도시도 있고, 전쟁이 한창이던 이라크 바그다드 다음으로 위험한 도시였던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도 있다.

한때 마약 조직, 납치산업 등 암울하고 추악한 이미지가 강했던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칠레 다음 가는 치안 모범국이 되었으며, 안데스 산속을 근거지로 한 도시 게릴라로 국가 기간 시설까지 만신창이가 된 적이 있었던 페루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경제성장률을 이루기도 하였다. 한국의 코트라가 이미 진출해 있고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쿠바는 미국과의 국교 재개로 우리에게도 더 밝게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양한 거대한 대륙을 우리가 한마디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우리나라 수출 흑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효자 대륙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사뭇 다른 나라들로 이루어진 대륙이지만 우리 한국에 공통된 점이 있다면 우선 정서적으로 이웃 일본보다 우리가 가깝다는 점이다. 이건 나의 주장이 아니라 일본에 다녀온 대부분의 중남미 출신 동료 교수들의 말이다. 북한과 단독 수교국인 쿠바에서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 드라마 비디오가 더 팔리고 있으며, 남미 어느 나라에서 K-POP 경연대회가 열리더라도 수십개 팀이 참가를 열망한다. 중남미 전자제품 시장에서 소니가 더 이상 LG나 삼성의 라이벌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제 고부가가치 산업인 IT를 포함해 컴퓨터 게임 등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의약품과 원격 진료, 온라인 쇼핑, 주택 및 플랜트 등 공공재 인프라 건설, 심지어 현지 정부 기관 행정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숙련되고 부지런한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널려 있다. 비전이 있는 젊은이라면 좁은 국내에서만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중남미 대륙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다양성만큼이나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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