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의 시발점은 헝가리였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할 즈음부터 정치 자유화를 실험하고 있었던 헝가리 공산당은 1989년 5월 2일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된 전기 철조망을 철거했다. 이는 헝가리 국민이 좀 더 편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으나 뜻밖의 사태를 불러왔다. 소문을 듣고 헝가리를 거쳐 서방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든 것이다.
이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자 동독은 헝가리 정부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헝가리의 조치는 자국이 다른 공산국가 주민의 탈출로로 이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위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인도적'인 이유라며 이들을 막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시기 체코슬로바키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휴가'를 온 동독 주민 수천 명이 프라하 주재 서독대사관의 가시 철조망 담을 넘어 망명한 것이다. 이들의 서독행을 막을 수 없었던 동독 당국은 이들을 밀봉(密封) 열차에 태워 동독을 거쳐 서독으로 가도록 했다. 탈출을 '추방'으로 포장하기 위한 술수였다. 그러나 밀봉 열차는 동독을 통과하는 동안 엄청난 환호를 받았고, 드레스덴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는 이 열차에 오르려는 수천 명의 주민과 경찰 간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동독에서는 시민의 자유화 압박이 더욱 거세졌고, 이에 겁을 먹은 동독 당국은 11월 9일 외국 여행 규제 완화라는 무마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권 발급 기간 단축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당시 그 법안을 발표했던 공산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는 그 법안이 외국 여행의 완전 자유화를 뜻한다는 투로 말을 했고, 이어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즉시"라고 답했다. 엄청난 실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직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유럽 각국이 난민의 쇄도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새로운 난민 유입 경로로 떠오르고 있는 헝가리가 남쪽의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175㎞ 길이의 철조망 장벽을 세웠다고 한다. 난민의 처지가 딱하지만 무작정 받아줄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해한다 해도 동독 난민을 위해 없앴던 철조망 장벽을 비유럽 난민을 막기 위해 다시 세운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상념을 갖게 한다. 장벽의 재건이 혹시 비유럽인에 대한 차별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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