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중국 텐진항에서 일어난 대형 폭발사고. 폭발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물과 접촉해 시안화수소라는 맹독성 물질로 변하는 시안화나트륨은 주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고 현장 주변 강에서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거리에는 독성 거품이 떠다녔다.
대형 화학물질 누출사고에 대한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재난 현장에 가장 빨리 도착해 사고 처리에 나서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우리 동네 유해물질 현황'에 대해 까막눈이란 사실은 불안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불씨…연이은 화학물질 누출 사고, 대형사고 이어질까 '아찔'
4월 25일 오후 1시 10분쯤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한 도로. 황산알루미늄을 싣고 가던 1t 화물차의 적재용기 뚜껑이 열렸다. 용기 안에 가득 차 있던 황산알루미늄 180t이 순식간에 넘쳐 흘렀고, 뒤따르던 차량 2대가 난데없는 화학물질 세례를 받았다. 황산알루미늄은 폐수처리제나 원료 침전제, 정수제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하루 전인 24일 오전 9시 40분쯤에는 경주에서 사고가 났다. 경주 안강읍의 한 공장 화학물질저장탱크가 폭발한 것. 2만ℓ 크기의 이소프로필알콜 저장탱크를 철거하기 위해 주입구 배관을 자르던 중 탱크 안에 남아있던 유증기가 불티에 폭발하면서 저장 탱크의 상판이 날아가는 사고였다. 자칫 대형 폭발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국내 화학물질사고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화학안전정보공유시스템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는 2010년 2건에서 2013년 7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6건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대구경북에서는 6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했다. 전국적으로도 2012년 9건이던 화학사고는 지난해 104건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이미 61건의 화학사고가 일어났다. 특히 중소기업 사업장과 학교 실험실, 연구소, 병원 등 화학물질을 소량 취급하는 장소에서 사고가 늘어난 점이 특징이다.
화학사고의 원인은 작업자 부주의가 태반이다. 2010년부터 올 7월까지 경북에서 일어난 화학사고는 모두 25건. 이 가운데 작업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12건으로 가장 많았고, 시설 관리 미흡(7건), 운송차량사고(6건) 등의 순이었다. 같은 기간 대구에서 발생한 화학사고 9건의 원인도 부주의가 5건, 운송차량사고가 4건 등이었다.
◆불만…환경청 정보 통보 전까지 지자체 사고 대응 매뉴얼 '無'
정부는 구미 불산 누출 사고와 같은 대형 화학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유해물질 관리 시스템을 개편했다. 특히 기존에 지자체가 맡고 있던 유해화학물질의 영업허가와 사고 대응, 행정처분 등의 관리'감독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시켜 버렸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큰 피해가 우려되는 물질은 사고 대비물질로 지정하고, 유해 관리 계획과 사고 대응 매뉴얼도 업체마다 마련하도록 했다.
문제는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 수습 임무를 맡는 소방당국이나 지자체는 정보에 어둡다는 점이다. 화학물질관리법 상 사고대비 물질이 69종에 불과하고, 지자체에는 1년에 한두 번 고지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만약 환경부로 업무가 이관된 올해 신규 허가를 받은 업체라면 지자체는 사고 발생 시 '깜깜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도 위험 정도나 대처 방법을 알기 힘들다.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중 20% 정도만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배출량 정보만을 공개하고 있다.
이 같은 정보 부족은 2차 피해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낳고 있다. 실제로 2012년 9월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당시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안전 장비도 없이 진입해 단순 화재로 여기고 물을 뿌렸다. 이 때문에 독성물질이 확산돼 피해가 오히려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주민들은 농작물과 나무가 누렇게 말라버린 뒤에야 맹독성 물질임을 알게 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올 1월 이후에 신규로 허가받은 화학물질 취급업체가 어디인지, 어떤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대구환경청에서 통보해주기 전까지는 알 방법이 없다"면서 "환경부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방안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북소방본부 한 관계자도 "환경부의 통보에 맞춰 화학물질 대처 사고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어떤 물질이 무슨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정보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불안…영주 특수가스 공장 증설, 주민은 "생존권 위협" 반발
화학물질 취급 기업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화학사고가 날 경우, 주변 지역 주민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지만 어떤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취급하는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특수가스 공장으로 영주시 가흥산업단지에 입주한 OCI머티리얼즈는 공장 증설 문제를 놓고 인근 마을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OCI머티리얼즈 측은 지난해 11월 지상 2층, 6개 동의 공장을 신축했고, 지난 1월 공장을 증설했다. 이어 지난달 설계 변경을 통해 공장 2동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필두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등은 "공장 증설은 영주시민 전체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차례 가스 누출과 폭발사고로 인명 피해는 물론 주변 동식물과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도 또다시 공장을 추가 증설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민들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공장증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인 불산과 암모니아, 실란가스 등은 극인화성으로 공기와 접촉해 폭발할 수 있고 화재 시 불에 타면 자극성'부식성 독성가스를 발생시킨다"면서 "독성가스가 바람을 타고 수십㎞를 날아가 영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OCI머티리얼즈는 "1월 공장 증설 허가 당시 주민들과 합의점을 도출했으나 최근 추가 증설 문제를 놓고 또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안전한 시설 마련을 통해 주민들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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