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오피스' 배우 고아성

이 시대 고단한 인턴사원들의 애환 스릴러로 연출

배우 고아성(23)은 3일 개봉한 영화 '오피스'(감독 홍원찬)를 통해 우리 사회에 흔한 인턴사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직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는 인턴 미례는 나일 수도, 내 친구, 또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모두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실의 모습이다.

고아성은 고단한 회사원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 밤에 혼자 광화문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어떤 회사원의 텅 빈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하루가 저도 모르게 그려지더라고요. '오피스' 시나리오를 읽고 미례가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어떤 눈을 가지고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눈과 표정이 그분에게 있었죠. 진짜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오피스'는 여느 조직에서 있을 법한 단면을 보여준다. 인턴뿐 아니라 상사와 동료를 대하는 서로의 태도와 행동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수군거림, 뒷담화, 대놓고 무시하기 등 현실의 일면이다. 여기에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 평범한 회사원의 등장은 섬뜩함을 더한다. 영화는 그가 다시 회사로 출근한 모습이 CCTV 화면에서 발견되고 그 후, 회사 동료들에게 의문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조직 사회의 숨은 폭력이 적나라하다. 비현실인 듯하지만 현실의 모습이라 더 섬뜩하다. '열심히'의 가치가 언제나 존중받는 건 아니라는 걸 짚어내는 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극단적인 해결법이고 잘못됐지만, 주인공의 답답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는 한다.

"저도 연기를 늘 열심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오피스'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나도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보기도 했어요. 이 영화는 열심히 하는 게 미덕이 아닌 느낌이랄까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요. 열심히 안 하는 데 잘하는 게 멋지게 보이는 경향은 없어지면 좋겠어요."

고아성은 "사원 염화영(이채은)이 인턴인 미례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눈치껏 하라'는 말이 유독 뇌리에 남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비겁한 일이잖아요. 사실 방법만 안다면 다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긴 할 거예요. 하지만 그 말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말 같아 싫어요."

염화영의 말에 참고 또 참던 미례는 감정을 폭발시킨다. "돌탑이 무너지기 전에 마지막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떠올랐어요. 그 작은, 티끌 같은 돌멩이가 염화영이었던 것이죠. 마지막 미례의 자존감을 건드렸어요. 제가 겪어 보진 않았지만 정말 솔직하고 와 닿는 사실이라고 할까요? 미례가 딛고 있는 바닥을 허물어 버렸어요. 너무 얄밉지 않았나요?"

'오피스'는 고아성에게 첫 스릴러다. 교복이 아닌, 정장을 입은 모습은 처음이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이 많아졌다"고 좋아했다. "물론 장르나 역할, 나이는 제게 큰 의미은 없어요. 내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니까요. 좋은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게 고등학생 역할이라면, 내 비주얼이 허락하는 한 당연히 할 거예요.(웃음)"

극 중 인턴 미례는 치열하다. 고아성도 치열하게 연기를 해온 걸까. "치열하게 사는 기간이 오래되면 무력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균형을 잘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요. 무심한 편이라고 할까요?(웃음)"

"초등학교 졸업 이후 화를 내지도 않고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그는 '오피스'에서 감정을 내지르는 연기를 실감 나게 했다. 전작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도 그랬다. 숨겨왔던 뭔가를 연기할 때 폭발시키는 것일까?

고아성은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서봄을 연기할 때도 개인적으로 통쾌함이 있었다"며 "나는 할 말을 다 참고 사는 편인데 서봄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행복했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런 쾌감이 '오피스'의 미례에게서는 느껴지진 않았다"고 했다. "정말 다른 지점이잖아요.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느냐고요? 해소될 때도 있지만 그건 1%에 불과한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될 때 오는 스트레스가 99%죠."

길거리 캐스팅으로 CF를 찍고 엄마를 졸라 연기를 시작한 뒤,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고아성. '영화광'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이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함께 본 딸이 어느새 봉 감독의 '괴물'에 출연했고, '설국열차'에까지 탑승했다.

고아성은 "사실 (CG 괴물을 상대해야 하니) 허공에 대고 연기할 자신이 없어 '괴물' 출연을 하기 싫어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만 출연해 보자"고 했고, '괴물'은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흥행 작품이 됐다. 고아성도 그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괜찮은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하니, 고아성은 "'괴물'을 첫 영화로 만난 게 좋았던 것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며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한 뒤 참여했으면 훨씬 더 연기를 잘하고 큰 성취감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했다. 연기자로서 욕심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이곳에서 벌써 10년 넘게 생활한 그에게 연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꾸준히 드라마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드라마도 하고, 새로운 방식의 영화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홍상수 감독님 작품('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나, '뷰티인사이드' 같은 참신한 소재의 영화에도 출연했죠.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향한 갈증이었죠. 똑같은 생각으로 비슷한 시나리오에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연기자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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