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장날의 추억과 쇼핑의 진화

어릴 적 장날이면 할머니는 동네 아낙네들과 시오리 길 '데보뚝'을 걸어 장에 다녀오셨다.

저녁 무렵 동네 아이들은 둑에 나와 장 보따리에서 꺼내 든 사탕, 운동화를 받아들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곤 했다. 후에 마을버스가 들어오면서 도보의 노역은 벗어났지만 장터 행렬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게 40, 50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쇼핑의 추억이다.

1997년 대형마트가 대구에 처음 생겼을 때 시민들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일단 150만 개가 넘는다는 아이템의 규모가 압권이었다. 차를 몰고 건물에 진입하면 빨강 모자를 쓴 직원들이 폴더 인사를 하며 반겨주던 모습도 당시로선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1+1' '묶음판매' '폭탄세일' 같은 자극적 문구들은 주부들을 들뜨게 했다. 몸살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부인이 '마트 가자' 하면 벌떡 일어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사실 마트는 쇼핑에 매우 불편한 공간이다. 가격 경쟁력도 높지 않다. 주차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야 하고 또 긴 계산대 줄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온라인 쇼핑몰이다. 인터넷 창을 열어놓고 콕콕 찍어 '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하루 이틀 새 택배기사들이 안방으로 날라다 주니 이거야말로 쇼핑의 천국이었다. 가격 면에서도 훨씬 저렴하고 수시로 날아오는 쿠폰은 소비자가 한눈을 못 팔도록 컴퓨터에 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엊그제 경주의 유명 빵이 한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왔다. 택배비를 합쳐 현지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다. 싼 맛에 주문을 했는데 놀랍게도 당일 배송, 다음 날 배달이었다. 온라인 업체들이 대도시 주변에 물류창고를 짓고 잘 갖춰진 유통망을 통해 상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대형마트들의 고유한 영역이었던 배달 서비스를 이젠 온라인 업체들이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쇼핑에도 '그늘'은 있는 법. 근래 '온라인 사기'라든지 '사진빨' 위주 마케팅이 한계에 부딪히며 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최근에는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시스템이 등장했다. 시중 매장에 가서 물건을 보고 입어본 다음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온라인의 가격경쟁력과 오프라인의 '체험형 마케팅'이 결합된 형태다.

얼마 전 미국에서 등장한 사물인터넷(IoT)과 쇼핑과의 결합이 눈길을 끈다. 가정에 바코드 스캐너를 나누어 주고 집에서 바코드를 찍어 직접 주문을 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케첩이 떨어질 때쯤 빈병에 바코드를 갖다 대면 근처 마트로 자동 주문이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냉장고에 부착된 사물인터넷 센서가 떨어진 물건을 자동으로 인식해 주문하는 방식도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온'오프라인에서 매출, 서비스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자칫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읽어내지 못하면 일부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들처럼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끊임없이 진화해 가는 쇼핑에 소비자도 혼란스럽다. 점점 쉽고 편한 구매에만 길들여지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된다.

새 고무신 신고 눈깔사탕 물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의 '쇼핑의 추억'은 돌아오지 못할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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