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아이의 졸업 선물로 작은 '꽃기린' 화분 하나를 받았다. 처음에는 정성들여 물을 주면서 관심을 갖고 열심히 지켜보면서 키웠다. 그런데 그 작은 화분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꽃기린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꽃은 화려하게 피지도 않으면서 가시만 숭숭 매달려 있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기보다는 내가 저 작은 화분에 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 질끈 감고 물을 주지 않고 내버려 두기로 작정하면서 어서 죽기를 바랐다. 죽기만 하면 쓰레기장에 버릴 요량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무심코 앞 베란다에 놓인 꽃기린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어서 버린 줄 알았던 작은 화분에서 예쁘고 빨간 꽃이 생글생글 웃고 있지 않은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어린 것이 얼마나 앙다물고 꽃을 피워왔을까? 그토록 긴 시간에 주인을 얼마나 원망하면서 살고자 바동거렸을까 생각하니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식물이지만 생명이 있는 것이었기에 가시로 독을 품으면서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날 나는 그들이 서로 다르지만 외롭지 않게 한데 어울려 화단을 이루기를 바라면서 꽃기린 옆에다 다육식물 화분 몇 개를 더 갖다 놓으며 내친김에 작은 꽃밭을 만들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누가 누가 잘 자라나 내기를 하는 듯 며칠 새 풍성한 화단을 형성했다.
꽃밭의 그들은 우리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키 큰 것은 뒤에 서고 약한 나팔꽃은 든든한 고무나무를 부여잡으며 올라가고 가끔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면 빵긋 웃으며 꽃으로 대답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말을 하지 못할 뿐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그랬다. 모든 약자가 그랬다. 이 꽉 깨물고 속으로 가시를 심으면서 열심히 꽃피기를 희망하면 끝내 꽃을 피우고 만다. 우리가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을지언정 제 딴에는 가장 화려하고 한창인 황금기인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이 꽃피지 않는 것이 없다. 다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언젠가 한 번은 꽃피고 지는 것이다.
다육식물도 처음 생겨서 오래되어 죽을 때까지 어느 한순간은 가장 왕성할 때가 있었다. 그때가 꽃필 때인 것이다. 고목도 그렇다. 처음에는 연약한 풀잎부터 시작해서 자라고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어느 한때는 왕성한 잎을 매단 채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다가 세월이 흐른 후 잎은 지고 둥치는 쓰러져 고목으로 박혀 있는 것이다. 다 한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꽃피고 지는 것'이라고 꽃기린이 가르쳐 준 이후 나는 뒤늦게 부랴부랴 꽃기린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꽃말은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예수님의 꽃'이다. 특징은 햇빛이나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뎌내면서, 강한 것으로 돼 있다. 아, 선물을 받고 몇 년이 지난 후 이제야 알았다. 그분의 심오한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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