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50년 전 이야기다. 인생살이가 아침 이슬이라고 했던가. 세월은 살 같다고 하더니만 정말 내 영혼의 창을 바람처럼 흔들던 그리움은 강물처럼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꽃다운 청순하고 예뻤던 처녀의 순결은 가고 백발에 검버섯이 얼굴에 쭈글쭈글 핀 보기 싫은 할머니로 변했다. 고생한 탓일까. 더 늙었다. 겉모습이 변한들 어떠하리. 우리가 나그네로 온 세상에 내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지는 것을 보니, 이제 내 차례가 가까워오는 것 같다.
'신(神)을 중심으로 사는 인간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자유로워지지만 아무 데도 갈 수 없듯이, 도덕을 벗어난 인간은 그와 같지 않은가?'고 묻곤 하던 편지 속 '선생님'은 20년 전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귀국하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며 '정아가 보고 싶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56세(속병)를 일기로 귀천했다. 내가 서독으로 떠난 후 나를 잊기 위해 술을 동이째 퍼마신 그는 상사병이 들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의 정조가 뭔지 모르겠다'고 50년이 지난 후에서야 할머니는 가슴을 쳤다. 만나서 말 못할 사연을 쓴 글이다. 혹 누구에게 들킬까 봐 가슴 두근거리며 고무줄로 꽁꽁 묶어 장롱 속 깊이 숨겨두었던 일기장과 편지들, 다른 사람들은 보석을 장롱 속에 감추어둔다는데 그녀는 표절, 정절, 인생의 낙인, 처녀성의 상실은 천형(天刑)보다 무섭다는 생각을 장롱 속에 감추어 둔 채 살았다. 평생 비밀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내 영혼의 영원한 그리움의 사연들이다. 예쁘고 미운 치매라도 들린다면 웃으면서 태울 수 있을까. 칠순을 지나면서 불태우려니 여인의 늙은 눈에 한줄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태우지 못했다. 내 몸을 태우는 것 같이 아파 내 손으로 불태우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사는 업보(業報)였다. 매일신문사 시니어문학상 공모가 아니었으면 그냥 버려졌다. 자취 없이 사라질 편지들을 부끄러움을 무릅 쓰고 잃어버린 한 여인의 50년 세월을 다듬어보았다. 2015년 6월 24일
제1편. 소녀의 꿈
존경하는 선생님께 드립니다.
날씨가 어찌나 메마른지 들에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가뭄 걱정 말씀이 이젠 만성이 된 듯합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렇게 서투른 펜을 들게끔 기회를 주신 이곳 저도 염려하여 주신 덕분에 참 잘 있습니다.
선생님! 정말 전번에는 죄송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의 입장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7월 29일)은 선생님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가 있었는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녁때에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는 벌써 저녁을 다 하셔 가더군요. 어찌나 미안한지 혼이 났어요. 다 큰 계집애를 두고 연세가 높으신 어머니에게 저녁을 짓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지난 1일 날은 아침 통근차로 나갈 때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제 마음에 확신을 했었는데,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서 여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차가 떠날 무렵 저를 위해 오셔 주셨으니 선생님의 그 고마운 마음을 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정말 차 안에서 죽 그 생각이 저의 머리를 꽉 메웠습니다. 선생님에 비해 전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한 계집애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한 가지 이야기를 드려야겠는데요 전 키는 커도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다음 때에는 말씀을 낮추어 주셔요. 제가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저를 막 나무라시지 뭡니까? 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여 주신다면 이 이야기를 잊지 마셔야 해요.
선생님과 저와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이 계셨더라면 전 한숨에 달려갈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이 알고 계시는 모든 지식을 탁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말입니다. 다음에 어떻게 기회가 있어 기다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에는 서둘지 마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인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하셨죠? 한때는 무척이나 우울하던 계집애였지만 전 이제 그런 기분은 없어졌어요. 그리고 가끔 외로움을 느끼곤 합니다만 이젠 그 고독을 잊고 참을 수 있는 힘이 제게는 생긴 겁니다. 읍내 친구들은 이런 절 보고 바보라고 비웃고 있지만 어쩌면 제가 친구들을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내게도 애인이 생겼다고 큰소리쳤더니 호기심에 찬 눈들을 제게 보여 주더군요. 옆구리에 끼고 있던 '女苑'(여원) 책을 번쩍 들어 보여주었죠. 기대와는 너무 시시하다는 친구들의 말에 다 같이 폭소를 하였습니다만, 정말 나쁜 애들이래요.
모두(친하게 지내던) 제 짝들을 찾아가면 그 옛날 시집을 가지 말고 우리끼리만 모여 살자고 발랄하고 티 없는 웃음을 웃던 그 조그마한 계집애들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성장 과정인지도 모르지요만.
선생님! 그리고 저에게 월간지 보내주신다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만 그만두십시오. 정말 선생님과 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시간이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찌나 친근감과 한없이 좋은 분을 만났다는 마음이 이렇게도 일어나는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고 싶은 것은 저의 이런 간절한 소망을 받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요사이는 어떤 책을 보시는지요? 시간에 쫓겨 책을 읽을 시간도 없겠지만 보통사람과는 다른 분이겠지요. 그걸 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런 시골에서 계집애라는 커다란 울타리로 한정된 생활을 나날이 되풀이하고 있는 이 계집애에게는 사사로이 펜을 잡기도 무척이나 힘듭니다. 가뜩이나 못 쓰는 글씨가 엉망입니다만 전 선생님이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겉봉투 보시고 의아해하시겠지요? 사실 저의 이름은 순녀(順女)래요. 하지만 작년에 아버지께서 서울을 가셔서 정아(靜我)라고 개명을 해 가지고 오셨어요. (물론 이름이 촌스럽다고 졸라서요.) 선생님께서 다음에 또 저에게 서신 주실 때는 정아란 이름을 사용하여 주시기를 빌며 시 한 수 드립니다.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얄밉도록 하늘은 너무 높습니다.
머지않아 가을이 오겠지요.
사람들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 하지만
가을은 너무 슬픕니다.
가을은 나를 울려줍니다.
인간의 무가치와 허무함이
저의 가슴속 깊이 스며듭니다.
가을을 알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벌써부터 겁을 먹은 계집애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알고 가을을 알기엔
이른 계집애가.
많이도 지껄였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선생님의 생활에 큰 번영이 있으시길 빌며, 다음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64. 8. 12. 봉성에서 정 드림
저녁노을 물든 하늘에
바람의 대화가 오고 간다.
울타리 옆 흩뜨려진 코스모스에
바람이 가을 편지를 전해준다.
빨간 고춧대 위에 잠자리 한가로이 날고,
지붕 위에 얹힌 커다란 박 옆에
늦게 핀 하얀 박꽃이 곱다.
콩 가지를 통째로 삼키는 소
오불 통통 살진 암탉이 수수를 쫓고 있다.
―어느 오후 저녁을 해놓고, 들에 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기다리며
선생님!
흩뜨려진 코스모스가 되어 선생님의 창문을 노크합니다. 지금쯤은 긴 잠에서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휴식시간입니다. 새벽 1시가 조금 못 된 지금 선생님이 몹시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도 안녕하셨습니까? 보내주신 글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잘 받았습니다. 여기 전번에 써 놓은 글월과 함께 부칩니다. 너무 나무라거나 허물을 말아주십시오. 선생님! 이 좋은 날씨에 어떻게 보내십니까? 물론 좋은 추억거리를 장만하셨을 테고요. 전 요사이 너무나 바쁩니다. 가을걷이에 어찌나 몸이 나른한지 솜과 같습니다. 낮에는 들에서 호되게 쏘다녀야 하니 이젠 그만 불 끄고 잠자라고 엄마가 무척 염려하십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오늘만큼이나마 엄마의 착한 딸이 되기 위해 이만 전원 스위치를 꺼야겠습니다. 내 방 앞 코스모스의 잠자리가 되어 멀리 날아갈 듯 가고 싶은 이 밤. 이만 서툰 펜 놓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64. 10. 10. 가을밤에 정 드림
오늘 낮차로 영주엘 나왔다. 큰집엘 들렀다가 시내엘 나왔다. 낮차로 같이 나온 계희와 같이 목욕을 하러 갔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기분이 어찌 유쾌한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더운 김이 피어오르는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들이 내 머리를 꽉 메운다. 나도 이젠 성숙한 육체를 가졌다고 자부하고 싶었고. 주위 사람들보다 내가 더 멋지다는 생각이 가슴에 엄습해 온다. 이렇게 내가 발가숭이로 있는데 미래의 그 사람이 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난 아마 더운물 속에 들어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을 거다 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나 혼자 멋쩍게…. 그러나 가슴이 왜 이리도 빈약할까?
내 옆에서 부지런히 몸을 문지르고 있는 계희의 그 희고 탐스러운 가슴엔 부러움마저 든다. 언젠가 우리 친구 여럿이서 목욕을 할 때, 키가 제일 큰 내가 가슴이 제일 작아 웃은 일이 있다. 옆에 있던 순이가 내 귀 가까이 대고 "내가 가슴을 크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하는 물음에 귀를 번쩍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손길이 닿으면 커진대…." '어유, 망측한 계집애라고' 그 애의 등을 밀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지 꼭 세 손가락을 꼽은 햇수가 지나가는 약간의 차이는 생겨도 역시 아직 남자의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내 가슴은 작다. 언젠가는 가슴을 크게 하고파 내 가슴에 닿을 따뜻한 손길을 기다려보았지만, 쉽사리 내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내 주변이 너무 메말라서일까? 아니면 내가 생활주변에서 너무 매몰차게 돌아서는 데서일까? 어머니께서 행여 이 글귀를 보시면 미친 계집애라고 나무라시겠지만 아무래도 이 글만은 끝을 맺어야겠다. 그리고 이런 방면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해 나는 더 많은 책을 읽고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게 많은 일을 하여야겠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내 존경하는 선생님과 만날 시간이 늦은 것 같다. 부랴부랴 서둘러서 목욕탕을 나와 '은하다과' 집으로 가보았다. 그때가 4시. 30분 동안 꼬박 기다리고 계셨다. 미안한 생각이 말할 수 없이 들고….
저녁은 선생님과 '청수장'에 들어가 양식을 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양식, 처음엔 속이 울렁거렸지만, 실력을 발휘해서 먹으려 드니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바보였을까 하고….
저녁을 마치고 아카데미 극장에서 '일본 천황과 폭탄'을 감상했다. 김진규, 박노식, 이예춘, 전창조, 태현실, 전양자 등이 열띤 열연을 하는 영화…. 돌아오는 길에 내 옆에서 걸어오는 선생님은 말이 없으시다. 벙어리처럼. 벙어리처럼.
1964. 10. 16. 일기 속에서
선생님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사실 이렇게 펜을 든 건 다름이 아닌 다가오는 12일 날 밤에 선생님이 해야 할 일(부적 방법)을 혹시나 잊으실까 봐 이렇게 서신을 드립니다. 친구분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더라도, 정말 잊어서는 안 되며 전 술 많이 잡수시는 분 싫어요. 선생님! 술 양 좀 줄이세요. 그리고 귀가 시간도 좀 당겨 주세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가시나가 주제넘게 술이니, 귀가니 하면서도 쓸데없는 넋두리를 나열합니다만 제발 부탁입니다. 들어주세요. 네? 조금이라도 절 생각해주신다면…. 그리고 또 하나, 저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가슴이 어찌나 무거워 옵니다.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걸 아는 것만 같고 머리가 무겁습니다. 다음엔 여쭐 게 있습니다. 키스에 대해서…. 많은 자료들 수집해 주십시오. 호호….
선생님을 위해 조그마한 정성을 들여 자수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드려도 될까요? 12일 날엔 잊질 마세요.
저녁 해 지는 저 어스름 길
먼 산이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일일까요.
그 사람 올 길 없는데
발길은 누구 마중을 가고 있는가
하늘에 달 떠오르며 우는 기러기.
회답 주십시오. 네 잎 클로버를 동봉합니다. 작년 여름에 찾아 헤매던 중 낙동강 둑에서 찾았던 단 한 잎을 일기장 속에 넣어 두었던 것입니다. 부디 행운이 깃들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65. 2. 9. 낮에 정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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