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다. 바윗돌 같은 묵직한 것이 가슴 한쪽에 들어앉은 것 같다. 창문을 열었다. 그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대문을 나섰다. 멀리 동서를 가로지르는 88고속도로와 남으로 이어진 구마고속도로엔 차들이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열며 달리고 있다. 나도 차를 몰고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다. 개 짖는 소리에 시선을 마을로 돌린다. 낯선 이의 방문에 짖는지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 짖는지 알 수 없다.
어찌하다 보니 이번 달에는 주말도 없이 근무하고 있다. 한두 주는 견딜 만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뒤틀리고 스멀스멀 짜증이 난다. 쉬고 싶다는 신호가 왔음이다.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달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시동을 걸었다. 이 밤에 어디로 갈까? 쌩쌩 달리는 차들의 행렬에 합류하기 싫어 한적한 들길로 핸들을 돌렸다. 시원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를 타고 가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싶다. 천천히 달려도 빵빵거리지 않아 좋다. 멀리 사문진 나루터의 불빛이 손짓한다.
사문진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 옥포 용연사와 함께 단골 소풍 장소였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그 당시에는 걸어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화원삼거리에서 내려 걸어가거나, 아니면 낙동강 강둑길로 타박타박 걸어가며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길가의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고, 풀과 풀을 묶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난도 서슴지 않았었다. 백사장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수건 돌리기, 닭싸움, 발 묶어 달리기를 했던 일들이 빛바랜 추억이 되어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지난겨울, '내일로 달성투어'로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았던 곳인데 혼자서 더군다나 이 밤에 찾기는 처음이다.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 건너 다산 고모 댁으로 가기 위해 강바람을 맞으며 나룻배를 탔던 그 자리에는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는 다리가 놓였으며 그 아래로는 나루터가 조성되어 뭍에서도 뱃놀이를 즐길 수 있게 나룻배와 유람선이 떠 있다. 강물에 불기둥이 섰다. 물에서도 꺼지지 않는 저 불기둥은 아침이 밝아오면 자동으로 꺼질 것이다. 네온사인처럼 야단스럽지 않아 좋다.
관음(觀音)이라고 했던가. 어둠 속에서 물소리를 본다. 헝클어진 실타래 같았던 생각들이 잔잔한 물소리에 올올이 풀리면서 밤하늘의 별들과 손을 잡는다. 자리를 털고 공원을 한 바퀴 돈다. 주막촌 앞 500년 된 팽나무 울타리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소원지가 꽂혀 있다. 1년에 한 번, 정월대보름날 태운다고 했으니 내가 적은 소원지는 지금 이 울타리 어디에도 없다. 소원지엔 가족들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바라는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 적혀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원을 적으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적을까? 집을 나설 때의 답답함이 계속되었다면 분명 '일탈'이라고 쓰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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