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신 스틸러' 오달수, 연기로 정면승부

천만영화 '감초' 넘어 남다른 아우라 품은 '난초'로 자리매김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연 캐릭터를 맛깔나게 받쳐주는 조연을 두고 '감초'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란 말. 그보다 더 나아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모든 장면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에서 '신 스틸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극 중 비중이 높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분량이 시작되면 무서울 정도의 흡입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배우를 말한다. 충무로에도 이에 해당하는 배우들이 많다. 그중 이번 글에서는 '암살'과 '베테랑' 등 두 편의 '1000만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 오달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천만 보증수표' 오달수, '1000만 영화'만 다섯 편

오달수는 1년에 평균 3, 4편은 기본, 많게는 10여 편에 육박하는 작품에 출연한 실력파 배우다. 개성 넘치는 조연으로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배우지만 워낙 다작을 하다 보니 이미지가 소비돼 어떤 역할을 맡아도 비슷해 보이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필자가 참여했던 모 시상식 심사과정에서도 조연 부문 수상자 선정 중 오달수의 수상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딴죽'을 걸지 않았지만, 같은 해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한데다 맡은 캐릭터가 서로 유사한 느낌이 강해 문제가 됐다. 해마다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캐릭터라기보다 '배우 오달수'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생활 연기자'라 굳이 상까지 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결국 오달수에 비해 작품 수가 적고 그 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배우가 희소성의 가치 및 극 중 존재감을 인정받아 상을 가져갔다.

바로 이 점이 오달수가 가진 어쩔 수 없는 딜레마다. 개성 있는 마스크와 연기력 하나로 승부해 충무로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몇 안 되는 배우가 됐지만, 영화 활동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이렇다 할 강한 느낌을 남기지는 못했다. 다작을 하다 보니 성공사례만큼 실패작도 늘었고, 성공작을 두고도 '오달수의 영화'라고 부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딜레마라는 표현을 쓴 건 지금 지적한 오달수의 문제점이 결국은 배우로서 그의 장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 자연스레 작품 속에 녹아들어 상대 배우와 호흡하고 전반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게 바로 오달수의 연기다. 주연보다 더 눈에 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본인의 역할에 충실해 정확히 위치를 사수한다. 그 때문에 제작진이 믿고 맡기는 배우가 됐지만 어쨌든 그 특성 때문에 한눈에 띌만한 배역을 만나 활개를 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오달수의 행보는 지금까지와는 분명 달라 보인다. '암살' '베테랑' 등 여름에 개봉된 두 편의 영화에서 주연급 조연을 맡아 한 달 사이에 '2천만 명을 견인한 배우'가 됐을 뿐 아니라 각 작품에서 확연히 차이 나는 캐릭터와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암살'에서는 하정우의 파트너로 살인청부를 하며 통쾌한 총격 액션까지 보여준다. 헤어스타일 등 외면의 변화뿐 아니라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심지어 섹시한 면모까지 드러낸다. 전지현-이정재-하정우-조진웅 등 쟁쟁한 배우들이 동반출연한 멀티캐스팅 영화인데도 그중 눈에 띄는 캐릭터로 스스로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베테랑'에서도 마찬가지. 황정민의 절친한 동료이자 선배 형사 오팀장을 연기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재치있는 애드리브로 웃음을 주며 활력소 역할을 해내고 주연배우 황정민을 받쳐줄 때는 적정선의 톤을 유지하며 본인이 돋보이기보다 장면 전체의 느낌을 살려내는 데 집중한다. 이건 분명, 자신만 돋보이면 그만이라는 듯 튀는 연기로 동료와의 호흡을 거부하는 특정 몇몇 배우의 오만한 모습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극 중 비중만 놓고 본다면 '암살'과 '베테랑' 속 오달수의 모습이 '도둑들' '변호인' '국제시장' 등 앞서 출연했던 세 편의 '1000만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의 크기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극 중 오달수가 끌고 가는 장면과 캐릭터의 중요성 및 표현력이다. '국제시장'에서는 주연에 가까운 비중을 소화했는데도 사실상 황정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변호인'에서도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러나, '암살'과 '베테랑'에서는 비중과 관계없이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주요 장면을 끌고 간다. '감초' 역할을 뛰어넘어 각 장면의 흐름을 견인하며 노련함을 과시하니, 적어도 올해의 활약상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는 누구도 쉽게 오달수에 '딴죽'을 걸지 못할 거라 생각된다. 이쯤 되면 주요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릴 자격도 충분하다.

◆지독한 사투리에 못생긴 외모까지 개성으로 승화

오달수는 대구와 부산지역에서 성장해 대학로 연극무대로 진출한 인물이다.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에 다소 위협적인 외모 탓에 처음부터 TV나 영화계에서 배우로 활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진 못했을 터. 그럼에도 오달수는 연극을 하는 동안 배우 생활의 연장을 위해 꾸준히 단역 또는 단편영화 작업까지 참여하며 영역 확장을 꾀했다.

그리고는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을 가둔 사설감옥 책임자 철웅 역을 맡아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그로테스크한 표정에 사투리를 곁들여 진한 여운을 남기며 이후로도 다수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조연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주먹이 운다' '마파도' 등 주목도 높은 작품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특히 박찬욱-류승완-김지운 등 충무로 A급 감독들과 연을 쌓으며 충무로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괴물 목소리 더빙을 맡아 화제가 됐던 사실만 떠올려도 오달수의 충무로 인맥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강한 마스크 때문에 주로 코믹하거나 음산한 캐릭터를 도맡다가 '해결사' 등 몇몇 작품에서 진지한 역할을 소화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는 김명민과 사실상 투톱이라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에 이르러 주연급으로 올라섰다고 할 만큼 영향력을 넓혔다.

또한, 그 사이에도 꾸준히 연극무대에 올라 '템페스트' '키사라기 미키짱'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이 때문에 조언을 얻기 위해 오달수를 찾는 후배도 꽤 있다. 충무로의 주연급으로 성장한 연기파 곽도원도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힘든 시기를 겪을 무렵 무턱대고 오달수를 찾아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오달수는 자신이 했던 대로 단편영화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했고 이 조언이 곽도원을 충무로까지 진출하게 만들었다.

곽도원뿐 아니라 송새벽 등 연극계에서 출발해 영화로 진출한 배우 중에는 오달수를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이들이 많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압도하다 이젠 스크린까지 장악한 선배에 대한 동경이 반영됐겠지만, 그보다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여전히 대학로 언저리를 맴돌며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오달수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지금도 대학로 인근 한성대 입구역 한 맛집에는 오달수 지정석이 준비돼 있다. 언제나 시간이 날 때면 그 자리에 나타나 거나하게 술판을 벌인다는 게 주인장의 말. 그리고는 후배들과 함께 연기와 인생에 대해 신명나게 설을 풀어놓는다. 뭐가 됐든 그저 연기 하나로 정면승부하며 살아가는 베테랑 연기자의 즐거운 인생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