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검찰청 까치

해가 거물거물 넘어가는 저녁답에 심각한 것도 즐거운 것도 없이 달달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옛날이야기로 정신없이 떠들다 잠시 대화가 뜸할 때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가을이 주는 쓸쓸함에 젖기도 한다. 쓸쓸함이란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오는 것이다. 더디 식는 커피를 휘휘 저으며 건너편을 응시하는데 갑자기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 앞 솔밭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검찰청이라는 무시무시한 건물 앞의 소나무들은 쭉쭉 뻗어 기개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푸른 소나무 꼭대기에 매단 까치집 두 채, 멀리서 보아도 단단하고 야물어 보인다. 저렇게 큰 집을 짓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부지런히 물어다 날랐을까? 비바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솔가지 수북한 중간쯤에 집을 지어도 될 것을, 하늘이 훤히 보이는 꼭대기에 간신히 얹어 놓은 듯 집을 짓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어느 산의 나뭇가지를 꺾어 와 도회지 한 모퉁이를 떡하니 차지해서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었는지 내내 궁금한 저녁,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나는 어렸을 적에 감나무 꼭대기에 간당간당 매달린 까치집과 리기다소나무에 조그맣게 지어놓은 까치집을 많이 보았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걸쳐놓아 엉성한 것 같았지만 그들은 거기에서도 알을 낳고 새끼를 치는 모양이었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동네에서 유일한 피서지는 안산 머리맡의 리기다소나무 아래였다. 조그만 멍석 하나와 종이로 만든 부채만 있어도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할머니의 피란 시절 이야기와 딸깍발이 이야기를 들으며 몇 권의 동화책을 읽은 양했다. 그때 키 큰 소나무를 올려다보면 까치집에서 주인은 보이지 않고 가끔 깍깍거리며 노니는 소리만 들리기도 했다. 어떨 때는 주위에 뱀이나 청설모, 족제비가 나타나면 유달리 심하게 까악 깍깍 울어 제치기도 했다.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 위험 신호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에 까치를 '길조'라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사실 집 앞의 감나무에서 이른 아침 까치가 지저귈 때는 오후에 꼭 집배원 아저씨가 다녀갔다. 아침부터 까치의 명쾌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늘 즐거웠다. 어린 날에는 항상 즐거웠고 리기다소나무 아래에서 산까치와 다람쥐와 함께 보낸 시절은 꿈만 같다.

나는 지금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옛날 리기다소나무 아래에서의 추억을 저으며 찻잔이 식은 것을 깜빡 잊었다. 푸르고 곧은 소나무에 집을 지은 저 까치는 옛날 우리 집 감나무와 동네 어귀의 미루나무에 집을 지은 까치가 분명하다. 그는 아무 데나 집을 짓지 않았다. 검찰청 솔밭에 둥우리를 튼 그들은 언제나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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