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게이버 메이트 지음/ 류경희 옮김/ 정현채 감수/ 김영사 펴냄
"자기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이런 대처 방식은 자기 바운더리가 흐려지고 심리적 차원에서 자기와 비(非) 자기의 혼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혼동이 세포, 조직, 그리고 몸 차원에서도 뒤따른다. 자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면역 세포들이 파괴되거나 무해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면역 세포들이 스스로 몸 조직을 공격한다."
이 책의 저자 게이버 메이트는 자기희생적 대처 방식을 성인이 되어서도 바꾸지 않으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들은 천식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암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그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다. 나치의 통치를 받던 부다페스트에서 생애의 첫해를 보냈고 가족들 대부분은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유아기를 보냈던 저자는 그 자신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삼았다. 내과 의사이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주의력 결핍 장애' '중독'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펴낸 데는 자기감정에 대한 성찰과 치유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감정적 고통이 신체질환을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의 핵심 키워드는 '믿음의 생물학'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이 사랑할 만하고 인정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과잉 경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적대적인 대상인지를 결정한다. 이 세상에 대한 아이의 지각된 내용은 세포의 기억장치에 저장된다. 이런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발달 과정 중인 신경계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전기적, 호르몬적, 화학적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된다. 분자생물학자 립턴은 이런 과정을 '믿음의 생물학'이라고 불렀다. "나는 언제나 강해야 해" "화를 내는 건 내게 옳은 일이 아니야" "내가 온 세상을 다 책임져야 해" 같은 잘못된(?) 무의식적 믿음들은 모두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오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대물림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트라우마 상속 현상은 "큰오빠가 알코올중독자였고 후두암으로 사망했으며, 여동생은 정신분열증 환자였고, 삼촌들과 숙모들이 알코올중독자였으며, 외할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고, 아들은 주의력 결핍 장애를 갖고 있고 약물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 나탈리 등 수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트라우마의 가족사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어지고 있다고 이해한다면 부모에 대한 비난은 무의미한 개념이 된다. 부모 역시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탓이다.
믿음의 생물학이 희망을 빼앗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잠재능력은 믿음의 생물학이 생리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의료를 선택하든, 대안적 치료 방식을 선택하든, 심리 치료를 선택하든 간에, 치유의 핵심은 개인의 적극적이고 자유로우며 정보에 근거한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외부 상황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믿음의 생물학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때만 가능하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의 고통과 동시에 몸이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통은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말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520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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