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삼·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 홍수…한약 수요 줄어

도매업 종사 약업사가 절반 가까워…일반 고객 볼거리·즐길거리도 적어

대구약령시 내 홍익한의원의 이재욱 원장이 한약을 조제하고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대구약령시 내 홍익한의원의 이재욱 원장이 한약을 조제하고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대구약령시의 침체가 2011년 8월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을 기점으로 가속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계 전문가들은 약령시의 쇠퇴는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진단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이 백화점 입점에 따른 상권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는 한의약의 본질적인 약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의약 자체의 인기 하락이 원인

한의약이 우리 건강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20,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60~90년대만 하더라도 자녀나 노부모의 건강을 위해 보약을 짓는 일이 흔한 풍경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의원이나 한약방에 들러 한약을 짓고, 집에서 약탕기에 정성껏 달여 먹고는 했다. 하지만 요즘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한약을 어느 정도나 찾을까. 각종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이 넘쳐나고, 홍삼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대에 옛날의 그런 풍경은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가 되고 말았다.

한약을 둘러싼 이 같은 환경의 변화는 한약재 도매상인들의 시름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있다. 한의사와 약령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삼, 비타민 등 한약 대체재 시장이 성장하면서 보약 수요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재욱 홍익한의원장은 "10여 년 전에는 보약을 지으러 오는 분이 지금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지금도 비염 치료 등 한약 처방이 이뤄지지만, 전체적으로 탕약을 찾는 이들이 줄다 보니 약재 소비량도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에는 만성질환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적은 한방을 선호함에 따라 한의사들이 각종 치료요법에 매진해 한약재 수요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구시가 위기에 놓인 대구약령시 활성화를 위해 한의약박물관 개관(2011년), 에코한방웰빙체험관 개관(2014년)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2011년 8월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 이후 약령시는 한방업소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9년 210곳에 이르던 약령시 일대 한방업소는 지난해 연말 기준 174곳으로 약 17% 줄었다. 상권이 위축되는 가운데 현대백화점 인접지역은 임차료가 동성로 상권의 70%까지 오르면서 업주들은 임차료 부담에 허덕이는 형편이다.

김순회 ㈔약령시보존위원회 이사장은 "과거에는 약령시에 유동 인구가 적어 고민이었다. 백화점이 생기면서 유동 인구는 늘었지만, 노령의 영세 상인들이 대부분이라 시대 변화를 좇기 어려워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안전한 한약재 공급을 위해 올해부터 한의원에서는 한약재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의약품의 제조'관리 기준) 인증을 받은 제조업소에서 생산한 규격품 한약재 사용이 의무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한약재 도매상이 판로 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의약품용으로 사용되는 한약재의 GMP 인증 의무화 시행 전 대구에도 GMP 시설이 한 군데 마련됐지만, 큰 자본을 가진 제조업소가 전국적 물량을 한 번에 인증받는 것과 비교했을 때 약령시 상인들이 인증받는 제품이 가격 경쟁력이 없다 보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김순회 이사장은 "약령시 공동의 GMP 시설 확보 등 살길을 모색하자니 당장 형편이 어려워 여의치 않고, 손을 놓고 있자니 앞으로 살길이 없어지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악순환의 반복

대구약령시에는 임차료 상승에 따른 한방업소 감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연결고리처럼 맞물려 있다.

대구약령시는 한약재라는 단일 품목을 취급하는 특수시장으로서 2001년 한국기네스위원회가 인증한 현존 최고(最古)의 약령시(1658년 개장, 357년 전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약재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의 부족이 문제이다. 2014년 12월 말 기준 이곳의 한방업소 중 약업사 비중이 76개소, 44%에 이른다. 도매업을 하는 약업사가 중심이다 보니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은 물론이고 일반 소비자들이 찾는 인기 한방 소매제품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수년째 산업통상자원부와 대구시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약령시보존위원회와 경북대 RIS 사업단을 중심으로 2011년부터 2017년 2월까지 '약령시 한방산업 구조혁신사업'에 총사업비 46억원을 들여 RIS사업(Regional Innovation System, 지역연고산업진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2천만원을 들여 약령시에서 생산하는 한방 제품과 한약재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었지만, 상품도 변변찮고 주문이나 조회도 거의 없어 유령 쇼핑몰로 전락하는 등 성과가 미흡하다. 게다가 노령의 영세 상인이 대부분이라 한방식품, 한방 화장품 등으로 업종 전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해 무관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황의욱 대구약령시 구조혁신사업단장(경북대 생물교육학과 교수)은 "약령시 RIS사업은 '머루와인' 등 특정 상품, 기업이 아니라 약령시 전체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연간 8억원 정도 예산을 전체 상인에게 나누면 큰 혁신을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며 "앞으로는 한방 관련 청년창업, 대표상품 육성 등에 지원해 근본적인 구조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약령시 살릴 길 없을까

현재 한약재 시장의 사양세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국내 한약 시장은 약재를 끓여 먹는 첩약이 주를 이루는데 첩약은 성분과 효능, 유통 기한, 가격 등이 일정치 않아 건강보험에서도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되는 탓이다. 반면에 세계전통의약시장의 규모는 약 300조원에 이르는 등 시장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중국 세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성약(한국의 한방제제에 해당) 세계시장 수출액은 2014년 기준으로 전년대비 약 14.5%가 증가한 약 36조원에 이르며, 세계 곳곳에 중의사와 중의약을 전파하고 있다. 일본도 대표적인 중성약 생산기업인 츠무라 제약 한 곳의 한방제제 매출 규모가 1조2천605억원(2009년 기준)에 이른다.

조일 대구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는 "세계적으로 중성약 등 한방제제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필요한 인프라 및 안정성과 유효성 평가 제도가 제도로 마련되지 않아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도 천연물신약과 한방제제에 대한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정해 중성약 개발이 활발해지면 한약재 시장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