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가 위기라는 말은 하루 이틀 나온 것이 아니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위세에 눌리고 직업 교육을 강화한 특성화고에도 치이는 지경이다. 일반고 중에서도 공립고 상황은 더 열악하다. 변화를 시도하고 경쟁력을 높이려는 사립고들과 달리 공립고는 그런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학생, 학부모도 공립고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달성군에 자리한 공립고인 포산고등학교의 선전은 단연 눈에 띈다. 물론 이곳은 다른 일반고와 달리 학생 선발권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더 큰 특징은 다양한 진로 집중 과정을 교육 프로그램 안에 녹여냈을 뿐 아니라 공모를 통해 부임한 교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이 같은 변화를 기획하고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포산고의 자랑이자 경쟁력의 핵심인 '포산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대해 살펴봤다.
◆진로에 초점 맞춘 포산 인재 양성 프로그램
각 고교는 지필고사, 수행평가를 바탕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성적을 매긴다. 수행평가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나 기능을 나타낼 수 있게 행동하는 과정이나 산출물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평가를 시행한다고는 하나 상당수 고교가 지필고사로 대체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포산고는 다르다. '진로 집중 과정'(단순히 인문'자연계열 구분에서 벗어나 학생의 흥미와 적성 등을 고려해 진로를 적절히 안내할 수 있도록 편성한 교육과정)을 방과 후가 아니라 정규 수업으로 편성했다. 또 이 과정 수행 후 학생들이 작성하는 보고서를 수행평가에 포함시켜 전체 성적의 30~60%를 반영하고 있다.
포산고의 진로 집중 과정은 '포산 인재 양성 프로그램(PES Program'Posan Excellent Student Program)에 포함된다. 이 프로그램은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와 손잡고 학생 진로에 맞춰 다양한 과목을 편성, 운영하는 교육과정으로 진로 집중 과정, 학생부 종합전형 대비반과 논술 수업 등 3가지로 구성된다.
진로 집중 과정의 경우 일반 교과목보다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배우는 심화과목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사회경제 심화과정, 생명과학 심화과정, 공학물리 심화과정 등 3개 과정으로 나눈 뒤 국제경제, 공학기술, 생명과학실험 등 모두 11개 세부 과목을 운영 중이다. 이 과목을 지도하는 강사들은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추천한 대학 강사와 교수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이 이 과정 이수 사실과 성취도 등은 그들의 학생부에 고스란히 담긴다.
학생부 종합전형 대비반 프로그램은 학생부 분석, 자기소개서 작성법 등에 대한 강의와 더불어 대학교수가 진행하는 모의 면접 등으로 구성된다. 수업은 주로 토요일에 이뤄지는데 학기당 총 8시간 정도 진행된다. 또 상위권 대학 위주로 시행 중인 논술 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학년별로 인문'수리논술반을 개설, 운영 중이다. 이 중 1학년 경우 논술 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학습 방향 설정과 사고력 심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일정 수준의 학습 과정을 거친 2학년은 보다 실제에 가까운 논술 시험 준비에 들어간다.
포산고 연구학력관리부 정우엽 교사는 "진로 집중 과정은 학생들의 능력과 특성을 고려해 시행하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어서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최근 진행한 두 차례 만족도 조사에서도 모두 90% 이상 만족한다는 답변이 나왔을 정도"라고 했다.
◆다양한 교육과정, 학생들은 즐겁고 진학 실적은 오른다
포산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포산고는 수능시험 위주 교육과정에서 벗어났다. 대학입시의 무게중심이 수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에서 수시모집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 발맞춰 과감히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뿌리내릴 기초를 다진 이는 전임 김호경 교장. 지난 1학기를 끝으로 퇴임한 김 전 교장은 교사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포산고에 접목할 교육과정을 찾아다니는 등 학교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번 학기부터는 남영목 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 교장 또한 이 프로그램의 장점을 충분히 인식, 확대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생들의 호응이 컸던 점도 포산고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데 한몫했다.
심리학을 수강한 김동욱(2학년) 학생은 '작은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체계화된 과정 속에 대학교수님께 관심 있는 학문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부에 이 활동이 기록돼 나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며 "아직 진로를 명확히 하지 못한 학생이나, 지망 학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학생,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학생에게 이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국제경제 과목을 이수한 노의민(1학년) 학생은 "수요와 공급의 규칙과 변동환율의 원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시장경제체제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며 "경제학자가 되는 게 꿈인데 세계경제체제의 변천사와 특징을 살펴보면서 세계경제 흐름을 짚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라고 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맞춤형 과목을 운영하면서 포산고의 진학 실적도 매년 좋아지고 있다.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수시모집에 4명이 합격한 것을 비롯해 고려대 9명, 연세대 1명, 서강대, 3명, 성균관대 19명, 경찰대 1명, 카이스트 1명, 의'치'한의대 4명 등 상위권 대학에 다수 학생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포산고는 이 프로그램 내용과 운영 성과를 널리 알리고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다음달부터 집중적으로 설명회를 연다. 10월 10일과 24일, 11월 21일 오전 10시 포산고 목련관에서 '학교 방문 입학 설명회'를 마련한다. 11월 6일 오후 7시에는 대구교육연구정보원 시청각실에서 입학 설명회를 갖는다.
포산고 남영목 교장은 "이 프로그램은 달성군청이 교육 경비를 지원하고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기획, 운영에 힘을 보탠다는 점에서 학교와 지역기관, 지자체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모델로서의 가치도 크다"며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대학입시에도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인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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