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뒤로 누렇게 익은 마개 들판은 황금 물결을 이루고 그 뒤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집안 형님네 집에 걸린 마을 전경을 담은 사진이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아주버님은 여러 번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내 서재에도 마을 전경을 담은 사진이 있다. 도동서원 전경이다. 대니산이 서원을 품어 안고, 서원은 그리운 임을 바라보듯 지긋이 낙동강을 내려다본다. 그 사이로 혈관 같은 도로가 지나간다. 서흥 김씨 뿌리 찾기 행사에 참여하면서 대종회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어디를 가든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있다. 도동서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다람재 고개가 그렇다.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든 다옥한 초록들이 머잖아 제 빛깔을 풀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을 하기 전 이맘때면, 강변에는 옅어지는 햇볕을 받으며 병정놀이하듯 줄지어 선 어린 배추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잡풀들만 무성하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 도동서원 주변도 알게 모르게 많이 변했다. 은행나무 옆에 있던 웅덩이를 메우고 소나무를 심었고, 울타리도 한결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었다. 기존의 유교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인문학과 결합하고 체험, 공연, 답사 위주의 문화재단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로 서원은 활기가 넘친다. 학생들을 불러 은행나무의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손을 잡고 재보자고 했다. 사실, 둘레보다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나무를 한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의 손에 둘러싸였음을 알았음인가. 은행잎들이 팔랑팔랑 춤을 춘다. 해맑은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서원으로 오르라니 사진 찍기 바쁘다. 은행나무를 든든한 배경으로 한다면 사진 찍기에 좋지 않은 곳이 없다.
환주문 앞에 섰다. 누군가가 서원을 나오면서 문을 당겼는지 닫힌 것처럼 보인다. 닫혀 있다는 건 보지 말라는 또 다른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답답하다. 발로 밀치고 들어가도 좋으련만 숨을 고르며 한 템포를 놓친다. 작은 문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들어가는데 급급하면 결코 보지 못할, 옹이가 빠져 생긴 문구멍. 카메라를 들이댄다. 환주문도, 환주문에서 바라보는 서원도 모두가 다 아름다운데 문구멍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중정당의 뒷바라지문도 추천한다. 바라지문을 열면 문틀이 사각 액자가 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포토존은 옹이가 빠진 자리다. 참꽃 피는 계절이 되면 최상의 포토존이 된다. 꽃피는 그때를 기약해도 좋으리라.
중정당까지 오르니 숨이 차다. 가을의 걸음걸이도 할딱거리는 숨소리처럼 빨라지고 있다. 실로 사진 찍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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