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종서 일파를 도륙했다. 그런데 구사일생한 김종서의 아들과 세조로 등극한 수양대군의 딸이 깊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죽인 정적의 아들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딸, 그렇게 맺어진 장인과 사위 간의 비극적 악연. 몇 해 전 방영한 TV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담았던 사연이다.
그런데 계유정난 속에 꽃 핀 원수 간의 이 사랑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나온 야사집인 '금계필담'을 재구성한 것으로 원래의 주인공은 수양대군 딸과 김종서의 손자라고 한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 드라마의 끝자락은 두 남녀가 가정을 이루게 되고 세조가 사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2012년 5월 러시아의 제왕적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푸틴도 둘째 사위를 한국인으로 맞았다.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어서 만류를 했지만, 딸의 지극한 한국인 남친 사랑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한다. '사위도 반 자식'이라는 옛말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딸과 사위 두 내외간의 금실이 좋을 때의 얘기이다. 다툼이 있어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인연이 끊어져서 남남이 되면, 상황은 영 달라진다. '딸 없는 사위'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출가외인'이니 '삼종지도'니 하는 여성을 예속하는 유교적 윤리개념이 고착화되기 전인 고려시대나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하며 장인에게 의지한 경우가 많았다. 장인과 처가 집안의 도움으로 위인이 되거나 명문가를 이룬 사례도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유래도 이와 유사하다. 장인과 사위 사이를 일컫는 옹서지간(翁壻之間)이란 말도 그렇게 나온 모양이다.
지금은 빙부(聘父)라는 호칭까지는 통용되지만, 과거에는 장인을 악옹(岳翁) 또는 악부(岳父)로 부르기도 했다. '큰 산과 같이 든든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장인의 존재가 사위에게 그만큼 정신적'물질적으로 커다란 의지와 존경의 대상이었음을 시사한다.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김무성 대표가 둘째 사위의 마약복용 사건 '봐주기 판결' 논란에 휩싸여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있다. '옹서지간'의 인연과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두고 '악부'의 고민이 깊을 듯하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