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년 달성 스토리로드] ①신라의 향기가 어린 화원읍

낙동강 흐르는 신화, 비슬산 휘감는 전설

천 리를 달리는 수말
천 리를 달리는 수말 '비무'를 대신해 화살보다 빠르지 못해 죽은 암말 '백희'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마비정(馬飛亭) 마을.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마비정 마을 담벽에 그려진 수말 '비무'와 암말 '백희'의 모습.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원의 상화대 전경.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원의 상화대 전경.
마비정 마을을 대표하는 마스코트 말 동상.
마비정 마을을 대표하는 마스코트 말 동상.

낙동강과 비슬산은 달성군의 얼굴이다. 안동~구미~칠곡을 빠져나온 낙동강은 달성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구불구불 흘러내리다가 현풍과 구지를 지나면서 넉넉한 삶의 터전들을 끌어안는다.

또 백두대간에서 동해안을 따라 뻗어나온 낙동정맥이 다시 비슬지맥으로 이어지면서 주산인 비슬산은 골골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에 얽히고설킨 전설을 잉태하고 있다.

'대구의 뿌리'인 달성군이 지난해 군 개청 100주년을 맞았고, 올해부터 새로운 100년을 위한 힘찬 도약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달성군 어느 곳에서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고 미래 발전의 초석이 되고 문화융성의 길잡이가 될 유무형의 자산이 지천에 깔려 있다.

매일신문은 대구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달성군의 어제를 더듬어보기로 했다. 전체 9개 읍면에 내재돼 있는 설화, 신화, 전설, 민담 등을 발굴하는 '100년 달성 스토리 로드(Road)'를 마련했다. 첫 번째는 화원읍이다.

◆신라 경덕왕의 행궁 화원

화원읍은 천내(川內)'구라(九羅)'성산(城山)'설화(舌化)'명곡(椧谷)'본리(本里) 등 6개 법정리와 43개 행정리로 이뤄져 있다. 비슬산에서 발원한 천내천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현재 읍소재지도 천내리다.

화원(花園). 신라 경덕왕이 가야산에서 병 치료를 위해 휴양 중이던 왕자를 문병 차 가던 중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이곳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아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까지도 화원이라는 지명이 명맥을 잇고 있다. 화원동산의 꼭대기를 상화대(賞花臺)라 했고, 곧 상화대가 '화원'의 기원이 된 것이다.

경덕왕은 화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무려 아홉 차례나 이곳에 들렀고, 그때마다 아홉 차례 마을에 빛이 났다 하여 마을 이름도 처음 구래리(九來里)에서 지금의 구라리(九羅里)로 변천했다고 한다. 국문법상으로는 '음의 부전(浮轉)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화원동산에 들어서서 족히 15분쯤 산길을 걷다 보면 '무지개 샘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땐가 경덕왕의 아들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었다.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나타난 내로라 하는 명의도 왕자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마침 왕이 꽃구경을 위해 화원의 행궁에 머물렀다. 인근의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 간 왕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목을 축이려고 시종에게 맑은 물을 떠 오도록 했다. 그때 갑자기 건너편 계곡에서 찬란한 일곱 색깔 선명한 무지개가 섰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시종이 무지개가 선 곳으로 내달렸다. 그곳 바위 밑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시종은 그물을 길어 왕에게 올렸고, 왕은 그물로 왕자의 병을 낫게 했다. 그로부터 이 샘을 왕이 목욕한 샘이라고 해 '어욕천'(御浴泉), 또는 '무지개샘'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마비정, 슬픈 말의 전설

화원읍 본리리 마비정 마을엔 슬픈 전설이 있다.

천 리를 달리는 '비무'라는 수말과 '백희'라는 암말이 대나무숲에 집을 짓고 살았다. 암말인 백희는 꽃과 약초를 먹고살아 몸에는 늘 향기와 빛이 났다. 수말인 비무는 백희가 먹을 귀한 꽃과 약초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면서 서로 사랑을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비무가 꽃과 약초를 구하러 멀리 떠나고 백희만 남아 있었다. 전쟁터로 떠나는 '마고담'이라는 장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비무와 백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고담은 천리마가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나무 숲에 남은 백희를 비무로 착각하고 전쟁터로 끌고 가려고 접근한다.

백희는 장수 마고담의 꾐에 빠져 비무가 전쟁터로 나가면 고생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비무인 척 고개를 끄덕였다. 마고담은 "천리마는 화살보다 빨리 달린다. 너의 실력을 보겠다"고 하고 바위에 올라서서 건너편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비무가 아닌 백희는 힘껏 달렸지만 화살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잔뜩 화가 난 마고담은 백희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일을 저지르고 묻어주지도 않은 채 가던 길을 재촉해 돌아가 버렸다. 백희의 먹이를 구하러 갔다 돌아온 비무는 백희 사체를 보고 구슬프게 울면서 백희를 뒷산에 묻어줬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백희의 무덤에 꽃과 약초가 놓여 있으면 비무가 다녀간 것으로 알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온 나라에 역병이 번져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나 이 마을은 백희의 무덤에 놓인 약초 덕분에 역병이 돌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백희의 혼령을 맞이하기 위해 대나무에 풍경을 달았고, 풍경이 흔들리면 나팔을 불어줬다.

마고담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백희의 무덤가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 정자가 바로 마비정(馬飛亭)이다.

◆비슬산의 나무꾼

비슬산 지맥인 삼필봉 밑 본리마을에 김 아무개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꾼이 살았다. 어느 날 산에 올라가니 바위 위에서 웬 노인 두 사람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에 몰두한 노인은 나무꾼이 왔는지 갔는지 안중에 없었다. 한참 만에야 바둑을 다 두고 한 노인이 나무꾼을 바라보며 "자네는 어디서 사는 사람인가? 신발을 벗고 여기로 올라오게"라고 말을 건넸다.

나무꾼은 "예, 저 아랫동네에 사는 김가라고 합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어디서 오셨는지요?"라고 되물었다. 대답이 없던 한 노인이 바둑판을 물리며 허리춤에서 노란 호리병을 꺼내고 무언가를 들이마셨다. 나무꾼은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 이것은 장생주(長生酒)일세. 자네도 한 잔 해보게나" 하면서 호리병을 나무꾼에 건넸다.

나무꾼은 달콤한 액체를 서슴없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그 사이 치켜들었던 고개를 내리고 살피니 어느샌가 두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꾼은 정신이 몽롱해 겨우 몸을 가누고 바위 위에서 내려와 짚신을 신으려 하니 짚신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짚신이 타고 재만 남아 있었다. 또 갖고 온 도끼의 자루는 썩어 없어지고 도끼날도 녹이 슬어 거의 못 쓸 상태가 돼 있었다.

나무꾼은 빈손에다 맨발로 마을로 내려왔다. 자기 집 앞 텃밭에서 낯선 노인이 밭을 갈고 있었다. "누군데 남의 밭을 갈고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이 밭은 내 밭이오. 이 집 또한 내 집이오"라고 했다.

"그러면 김 아무개라는 사람을 아시오"라며 자신을 이름을 들먹이며 다시 물었다. 그 노인은 "아 그분은 나의 고조부 어른이오"라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놀란 나무꾼은 자기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니 하얀 수염이 가득 자라 있었다. 나무꾼은 자기집을 등지고 다시 비슬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나무꾼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돌려세운 아들

고려 때 현(縣)의 소재지였다고 해서 현터(縣基)라고 불렸던 화원읍 명곡리에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사사건건 맞서며 서로 미워하는 사이였다. 손자가 태어났지만 시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남편은 시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 마누라를 내치고 새로 장가를 갈 생각을 해 보았지만, 재산이 넉넉지 못해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하루는 남편이 기가 막힌 묘안을 찾아냈다. 저녁상을 물린 남편은 아내에게 "우리는 참 복도 없는 사람이네"라고 하자, 아내는 "아니, 왜요?"라고 되물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처럼 우리 아버지가 살이 좀 쪘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는데 저렇게 여위어서"하고 혀를 끌끌 찼다. "살이 찌면 어떻게 팔자를 고칠 수 있어요?" 약삭빠른 아내는 남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어 남편은 "나이 많은 노인이 한 백 근 정도만 나가면 중국 사람들이 와서 돈을 주고 사간다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아내는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얼마 후 "그래요? 그러면 살을 한번 찌워 봅시다"라며 오히려 남편을 채근하는 듯했다.

이튿날부터 시장에 가 고기를 사서 자기들은 먹지 않고 시아버지 상에만 올렸다. 영문을 모르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안 먹던 고기를 매일 먹으니 살이 통통 올랐다.

이제 며느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손자도 업어주고, 마루도 쓸고, 방도 닦고, 온갖 집안일을 도왔다. 시아버지가 잘해주니 며느리는 '참말이지 이런 시아버지도 없다' 싶었다. 그렇게 서로 보살펴가며 3년이 흘렀다. 시아버지의 몸무게도 백 근을 훌쩍 넘어서게 됐다.

어느 날 남편은 "이제 아버지를 팔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자 아내는 "당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손자도 잘 봐주시지, 청소도 잘하시지, 아버님이 저렇게 도와주시니 집안살림이 일어나는데 팔다니요. 그런 벼락 맞을 소리 하지도 마시오"라며 펄쩍 뛰었다.

이 가정은 대대손손 화목이 이어졌다고 한다.

◆뱀산과 개구리산, 그리고 양반산

화원읍사무소에서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긴 산이 보인다. 뱀산이다. 서쪽에는 양반산이 있다. 그 중간에 있는 산이 개구리산이다. 지금의 개구리산은 고속도로가 뚫리는 바람에 일부분만 보인다. 이 산들의 형상이 각각 이 같은 동물을 닮았다 해서 불린 이름이다.

옛날에 뱀산에 살던 뱀이 개구리산의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고 고개를 내 뻗으니 뒤에 앉았던 양반이 "예끼, 이놈" 하고 무릎을 치며 호통을 쳤다. 이 호통에 놀란 뱀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서 양반산은 무릎을 치고, 뱀산은 고개를 돌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고속도로 때문에 개구리산이 헐리게 됐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개구리산은 결국 뱀에게 몸뚱이는 잡아먹히고 꼬리만 남은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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