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불량 수류탄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가 반란군인 프랑코파에게 패배한 원인 중 하나는 동맹세력의 빈약한 지원이었다. 프랑코파는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로부터 우수한 무기와 상당한 병력을 지원받았다. 2차 대전 때 영국의 스핏파이어와 쌍벽을 이뤘던 독일의 Me-109 전투기, 대공포로 개발됐으나 우수한 직사(直射) 능력과 파괴력 때문에 대전차포로 활용되기도 했던 유명한 88㎜ 대포가 2차대전에 앞서 스페인 내전에서 활약한 병기다.

미국도 프랑코에게 상당한 지원을 했다. 포드, 스투드베이커, 제네럴모터스 등의 군용트럭 1만2천 대가 프랑코파에 제공됐는데 이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공화파에 지원한 것의 세 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미국의 지원에는 이뿐만 아니라 공화파가 수입한 규모의 두 배가 넘는 350만t의 석유, 거대 화학기업 듀폰이 만든 4만 발의 폭탄도 있었다.

반면 공화파는 고립무원이었다. 공화파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불간섭'이라는 이름의 외면이었다. 그래서 공화파는 소련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소련도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을 잇는 파시즘 세력의 확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화파의 구원 요청에 응했다. 그러나 무기의 질은 프랑코파가 지원받은 것보다 훨씬 떨어졌다. 대포는 제정시대에 제작된 것도 있었고, 소총도 구경(口徑)이 제각각이었다.

소련이 지원하기 이전, 공화파의 무장 상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소총은 제원(諸元)별로 매우 다양해서 노동자들로 구성된 의용군의 경우 구경이 서로 다른 무려 16종의 소총으로 무장한 부대도 있었다. 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수류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몰라 적군보다 아군에게 더 위험했다. 그래서 의용군 병사들은 토마토 캔에 다이너마이트를 채워 넣은 사제(私製) 수류탄을 더 믿었다고 한다. 이러고서야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50사단에서 신병 훈련 도중 폭발한 수류탄에서 이미 지난해 치명적인 결함이 확인됐다는 사실은 자식을 군에 보낸 이 땅의 부모들을 분노케 한다. 지난해 4월 정기 점검 결과 30발 중 6발에서 지연시간 3초 미만의 결함이 발견됐으나 군은 같은 연도에 생산된 6만 발에만 하자 조치를 취했다. 군 고위층이 병사들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했어도 이렇게 무신경했을까? 우리 병사들의 처지가 토마토 캔 수류탄으로 싸웠던 스페인 공화파 병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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