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포용의 정치, 배신의 정치

역사적으로 칭송받는 지도자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포용의 정치'를 했다는 점이다. 좋게 말하면 포용이고, 달리 말하면 정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포용 정치'의 달인이라할 만했다. 그가 1860년 11월 미 16대 대통령 후보 공화당 경선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의 당선을 점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뉴욕주 상원의원인 에드워드 시워드의 당선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시워드 측은 링컨을 '일리노이 출신의 시골뜨기'라고 불렀다. 당시 열렬한 노예제도 폐지론자였던 시워드 자신은 링컨을 두고 "남부 표를 의식해 노예 제도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않는다"고 몰아붙였다. 이들은 링컨이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자 '도둑을 맞았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정도였다.

당시 민주당을 지지하던 언론은 "공화당이 삼류의 서부 변호사, 무식한 사류 웅변가를 공천했다. 이는 그들의 지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해 대권을 거머쥔 것은 그들이 조롱했던 링컨이었다.

포용의 정치가다운 링컨의 면모는 오히려 당선한 뒤에 나타났다. 링컨은 자신을 업신여기던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역시 공화당 후보 경쟁자였던 새먼 체이스 오하이오 주지사는 재무장관에, 에드워드 베이츠 미주리주 판사는 법무장관에 앉혔다. 그가 국무장관에 발탁한 시워드는 당시 쓸모없는 땅으로 여겼던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사들이는 업적을 남겨 발탁에 보답했다.

송사에서 링컨의 반대편에 서서 그를 '긴 팔 원숭이'라고 조롱했던 에드윈 스탠튼 변호사는 전쟁장관이 됐다. 1864년 대선에서는 역시 정적이던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을 발탁하며 링컨은 재선에 성공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노예 해방을 쟁취했으며, 자칫 남북으로 갈라질 수도 있었던 미국 역사를 바꿔 놓았다. 모두가 반대파를 끌어안은 포용의 정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 '포용 정치'의 대가였다. 그는 늘 신하들에게 쓴소리를 주문하고 다녔다. "(지금은) 과감한 말로 시비를 가려 임금에게 따지는 자를 보지 못하였으며 또 말하는 것이 매우 절실 강직하지 않다"며 직언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임금이 회의시간에 안건을 내놓았을 때 "한 사람이 옳다고 하면 다 옳다고 말하고 한 사람이 그르다고 말하면 다 그르다고 말하는 등 중론을 반대하여 논쟁하는 신하가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대간에 대해서는 "언책(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직책)을 직임으로 삼는 것이니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다 말하라(중략)… 내가 어질지 못하고 사물의 처리에 어두우니 반드시 하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힘써 그 허물을 생각하여 하늘의 꾸짖음에 대답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 전원이 참석하지 못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청와대나 대구시는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박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 탓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후 이틀 뒤 인천 방문에는 인천 지역 전 의원이 초청됐다. 지역행사 때 지역 국회의원 초청 여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이것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던 박 대통령의 주문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임기의 반환점을 넘긴 박 대통령은 할 일이 많다. 그중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는 것은 들어 있지 않다. '배신의 정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포용의 정치'다.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다 내치면 대통령 주변에는 대통령 눈높이보다 낮추려는 사람들만 들끓게 돼 있다. 그런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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