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아직도 어둠에 잠겨 있어 산해골의 그림자가 오며 가며 춤춘다. 거리는 언제 밝아지려 하느냐. 울고만 지낼 수 없는 무리도 있나니.'
우리나라 초기 영화의 주춧돌을 놓은 영화감독 김유영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1929년 개봉한 영화 '혼가'의 주제곡이었으며, 김유영 감독이 1928년 쓴 글이다. 기념비는 김유영 감독의 생가 마을인 구미 고아읍 원호초등학교 뒤편에 서 있다.
김유영 감독은 1908년 9월 22일 구미 고아읍 원호리 12번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영득(金榮得)이다.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다. 나운규 감독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 감독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기, 한국 영화사 초창기를 빛낸 대표적인 감독이었다.
한국 순문학을 이끈 '구인회'의 발기인이었으며, 청룡영화제의 전신인 조선영화제 창립을 주도하는 등 일제강점기 영화예술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다양한 재능에다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1940년 1월 4일 32세로 요절했다.
◆무산계급'조선농민의 저항 그려
김유영은 구미 출신으로 1923년 대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항일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보성고보로 전학했고, 1925년 보성고보를 졸업했다. 그해 소설 '꽃다운 청춘'을 발표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곧 영화에 투신했다. 카프(KAPF)의 연극부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안종화'이우'이경손 등이 1927년 조직한 조선영화예술협회에 가입해 영화 수업을 받았다.
1928년에 신경향파(新傾向派) 계열의 최초 영화이자 무산계급 농민의 저항을 그린 '유랑'(流浪)을 처음으로 연출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영화 '유랑'은 신문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일제에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던 청년이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겪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배우 임화, 서광재, 강경희, 장연숙 등이 출연했다.
1929년에는 협회의 명칭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판단, 서울키노(혹은 서울영화공장)로 개칭하고 제2회 작품으로 무산계급 민중의 서러움과 투쟁을 그린 '혼가'(昏街)를 연출했다. 김유영의 작품은 노골적으로 좌익으로 기우는 대신 민족항일기에 고통받는 조선 민중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식민지 조선인의 현실 끄집어내
김유영의 초기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식민지 조선인들의 참담한 현실을 끄집어냈고, 전국적으로 무산계급영화 제작 열기를 파급시키는 단초가 됐다. 숨죽이고 목소리를 낮춘 채 앓던 조선인들의 울분이 영화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방에서 제작을 시도한 많은 작품은 자본 부족으로 대부분 완성되지 못했다.
첫 작품의 흥행 참패에도 김유영은 1931년 영화 '화륜'(火輪)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조선시나리오 협회 소속으로 활동하던 이효석, 김유영, 안석영, 서광제 등이 중외일보에 발표한 연작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조선인의 참담한 생활과 노동쟁의를 그린 작품이다. 도시 조선인의 참담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투쟁을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카프 계열의 영화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김유영은 1938년 이구영, 이명우, 김태진, 안종화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인 '조선일보영화제'를 개최했다. 자신도 많은 작품을 출품했고, 입상도 했다.
◆소설가 최정희와 짧은 결혼생활
김유영은 1930년 소설가 최정희와 결혼했다. 최정희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였으며, 시인 백석, 천재 시인 이상 등으로부터 구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930년 일본에서 유치진을 중심으로 유학생들이 신극운동을 할 때 함께 문예운동을 하다가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했지만 최정희는 김유영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 두 사람은 이혼했고, 최정희는 그해 시인 김동환이 발행하는 잡지 '삼천리'의 기자로 입사하면서 김동환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김동환은 첫 부인과 결혼해 자녀가 있었으나, 최정희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와 새살림을 차렸다.
◆순수문학단체 구인회 결성
김유영은 이종명과 함께 1933년 우리나라 최초 순수 문학단체인 구인회(九人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등 9명이 창단 멤버다. 구인회는 1930년대를 풍미했던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항해 순수문학을 고집했다.
구인회의 처음 시작은 친목회였다. '순연한 연구 입장에서 상호의 작품을 비판하며 다독다작'하는 것을 목표로 창립한 클럽인 셈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점점 경향문학에 반대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1935년 동인지의 성격을 띤 시와 소설을 발표했고, 문예 강연회를 가졌으나 동인 간의 작품 경향 불일치와 분열로 곧 해체되고 말았다.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김유영, 이효석, 이종명은 1934년을 전후해 탈퇴했고, 유치진, 조용만은 1935년을 전후해 탈퇴했다.
회원 간 분열을 겪었지만 구인회가 당시 문단에 끼친 영향은 컸다. 구인회에 참가한 작가 대부분이 새로운 감각과 기교를 지닌 작가와 시인들이었고, 이효석, 이태준 등은 세련된 문장으로 우수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해 한국 현대소설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단 신건설 사건으로 옥고 치러
극단 신건설은 진보적 문예운동을 추구하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의 연출극단이다. 1934년 신건설 창립작으로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제작해 지방 순회공연을 했다. 1934년 신건설이 지방 공연 중일 때, 전북경찰서 고등계가 중심이 되어 신건설사 회원들을 대거 체포했다. 한 학생이 가지고 있던 신건설의 전단이 빌미가 되었고, 전북을 시작으로 경성부와 평안북도, 평양, 경기도 등지에서 남녀 약 70여 명이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은 주로 학생, 교사, 기자, 배우 등 지식인들이었다.
체포된 70여 명 가운데 핵심 인물 23명은 1935년 10월에 기소되었다 두 달 후인 12월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유영도 이때 기소되어 복역했고, 이 사실이 해방 후 항일 문화운동으로 인정받아 199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김유영의 옛 부인이었던 소설가 최정희도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옥고를 치른 사람이다.
김유영은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갔다. 한국 최초의 영화제인 '조선일보영화제'를 개최했고, 영화 작품으로 애련송, 아리랑, 유랑, 화륜 등을 남겼다. 영화 외에 희곡 '지하층소동', 수필 '합창대의 13녀', 시나리오 '처녀혼' 등이 있다. 1940년에 자신이 감독한 '수선화'의 개봉을 앞두고 지병인 신장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유영 감독의 마지막 작품 수선화
김유영의 마지막 작품 '수선화'는 1940년 8월 25일 성보극장에서 개봉됐다. 이 작품을 촬영할 당시 김유영은 극도의 가난과 지병인 신장염으로 육체적 탈진, 정신적 방황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탐미적이다.
'과년한 신부 유 씨는 열세 살밖에 안 된 신랑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어린 신랑마저 3년이 못 되어 죽고 말았다. 20년 후 유 씨는 친척집에서 동길을 양자로 들인다. 유 씨의 재산을 탐낸 동길의 형제들은 유 씨가 같은 마을 글방선생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마침내 유 씨는 마을 호수에 투신자살한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한 것이다.
유 씨의 유서는 마을 글방선생에게 전해졌다. 글방선생은 비명에 죽어간 유 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영원한 처녀의 순정을 상징하는 비문을 지어 비석을 세웠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습에는 탐미주의적 색채가 짙게 드리운다. 영화는 김유영 감독 자신이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작품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깨끗한 몸과 정신으로 영원히 남기를 원했던 여주인공이 죽음을 택하듯이,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영원히 살기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배우 남승민, 문예봉, 김신재, 이금룡 등이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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