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악연이 맺어준 인연

"테러분자들은 사설 가운데의 '모종 행렬' 운운을 적성감시위원단 축출을 반대하는 뜻으로 꼬집어 억지로 구실을 만들어 평소의 언론에 대한 분풀이를 한 셈이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경찰 당국은 신문사를 습격한 테러 행위는 방치하고 그 사설을 쓴 주필 최석채 씨를 문제로 삼았다. 경찰은 최석채 씨를 구속하기에 이르렀다…동시에 애국단체연합회란 단체는 그 사설을 규탄하는 성토대회를 열고 거리에 벽보를 붙이는 등 야료를 떨었다."

소설가 이병주는 1989년 대하소설 '산하'에서 자유당 정권 이야기를 다루면서 매일신문사의 사설과 관련한 '백주의 테러'를 2쪽에 걸쳐 소개했다. 소설에서 언급한 '모종 행렬'이란 학생을 동원해 정부 고위관리 환영 행사에 이용한 것을 비판하며 최석채 주필이 사설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즉 '이즈음에 와서 중'고등학생들의 거리 행렬이 매일의 다반사처럼 되어 있다'는 부분이다.

또 '적성감시위원단'은 6'25 남침전쟁으로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의 준수 여부를 지켜보기 위한 국제 4개국 감시위원단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감시위원단 중 폴란드 등 2개국이 북한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전국에서 감시위원단 축출 시위가 벌어져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럴 즈음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이 나왔으니 자유당과 산하단체가 비판 언론에 분풀이하기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다. 소설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인물(이종문)에게 대구경찰국 간부 등이 사태 해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런데 자유당과 신문사와의 악연은 전부터였다.

바로 '오식(誤植) 사건'이다. 이 대통령이 대구의 경북도청 피란 시절인 1950년 8월 20일 자에서 대구매일신문은 '이 대통령(大統領)'을 '이 견통령(犬統領)'으로 오보했다. '큰 대'라는 활자를 '개 견'으로 잘못 뽑아 그대로 인쇄한 것이다. 졸지에 '개대통령'이 됐고 사장은 당장 투옥되고 신문은 무기정간됐다.

1946년 남선경제신문으로 시작해 1950년 8월 1일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자마자 일어난 사건이었다. 사장은 천주교대구교구에 신문사를 넘겼고 테러까지 당했다. 창간 뒤 좌익폭도 습격에 따른 시설 파괴 이후 두 번째다. 신문사와 천주교재단의 인연은 정부와의 악연으로 맺어졌고 14일 테러 60주년을 맞았다. 오로지 변함없는 독자들의 사랑 덕분이다. 그저 고맙고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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