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의원들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 보인다. 여야(與野)를 가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역구를 돌고 있는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의원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혹자는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들에게 부끄러워 그런 모양이라고 순진하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원래 국회의원들의 사고는 이런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전적으로 국회의원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공천 방식과 계파싸움 등 수많은 변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공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탓이다.
특히 TK(대구경북) 의원들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 TK 의원들을 손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쫓아낼 때부터 '보복의 칼날'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박 대통령이 7일 대구'경주 방문 때 TK 의원들을 단 한 명도 호출하지 않고 출마 가능성이 있는 4명의 청와대 참모를 수행시킨 일은 자신의 행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제야 TK 의원들이 불안감에 떨기 시작한 것을 보면 정치 감각이 뒤져도 한참 뒤지는 것 같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이러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TK 의원 대부분이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월호 사건 등으로 그렇게 어려울 때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대변해준 TK 의원은 거의 없었다. 박 대통령에게 의지해 금배지를 달아놓고는, 차기 TK 맹주 운운하며 대통령과 적대적인 유승민 의원 쪽에 줄을 섰으니 인간적으로 말이 되는가.
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배신임을 누구나 안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심복에 의해 목숨을 잃고, 친했던 사람들마저 아버지를 비난했던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다. 거기다 박 대통령은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고 과감한 성격을 갖고 있다. 얼마 전 그렇게 아끼던 동생 지만 씨를 내치는 모습을 봐도 서릿발이 느껴질 정도인데 피하나 섞이지 않은 남을 쳐내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진노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의원이 대구 2명, 경북 2, 3명에 불과하다는 살생부(殺生簿)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다른 지역 공천은 알아서 하고, 대구경북의 공천권은 나에게 달라고 제의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지만, 현재 김무성 대표의 곤궁한 처지에 미뤄 그렇게 될 개연성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될 경우 김무성 대표가 내세우는 오픈프라이머리도 물 건너가고, TK 의원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이 벌어질 가능성도 농후해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뭐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박 대통령의 '보복 심리'는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사실 TK 의원 중에 공천=당선이라는 등식 때문에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뛰는 이는 극소수이고, 당내 정치에 매몰돼 자기 살 궁리만 하기 일쑤였다. '대학살'을 당하더라도 그리 아쉽거나 안타깝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물갈이가 필요한 듯 보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정치 보복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치사에 최악의 선례를 남겨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지혜롭고 여유 있는 큰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지역 국회의원들에게는 가을바람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된 것 같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