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문구점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다양한 카드 사이를 누비며, 어떤 것을 골라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던 기억이 있다. 납작하게 접힌 한 장의 페이지를 펼치면 루돌프가 끄는 썰매와 산타할아버지가 불쑥 솟아나는 입체카드, 또 버튼을 누르면 캐럴이 흘러나오는 멜로디카드 등 단순히 2차원 면 속에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라 흥미롭고 재밌게 만들어진 카드들이 많았다.
팝업북은 이를테면 확장된 입체카드다. 팝업북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어린 왕자' 팝업북을 접하면서다. 익숙한 원작의 그림이 그대로 페이지마다 툭툭 솟아오른다. 그림이 불쑥 솟아 산이 되기도 하고, 손으로 종이 손잡이를 돌리면 해가 뜨고 달이 지기도 하며, 어린 왕자가 앉아 있는 곳으로 뱀이 솟아올랐다 내려가기도 한다. 보림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역시 만만치 않다. 페이지마다 울창한 숲이 솟아오른다. "나무늘보가 보이시나요?"라는 문장을 따라 숲 사이에 숨어 있는 나무늘보를 찾는 데 한참이 걸린다.
충북 괴산 '숲속 작은책방'의 책방지기 두 분이 최근 '작은 책방, 우리 책 좀 팝시다!'를 발행한 것과 관련 더폴락에서 작은 북콘서트를 열었는데, 그때 가지고 와 참가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 책 또한 팝업북이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온 책방이 환해질 만큼의 꽃들이 불쑥 솟아올랐다. 글은 단 한 글자도 없지만 그야말로 그대로 책을 펴면 책상 위에 작은 연못이 펼쳐지고 수련이 솟아오른다. 미국 출판사 Chronicle에서 발간한 'Paper Blossoms'이라는 책이다. 한 면을 펼쳐 놓으면 그대로 한 공간을 장식하는 화분이 된다.
'책'이라고 하면 흔히 텍스트 위주의 책들을 떠올리지만, 책은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지닌 매체이다. 종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입체적 세계, 그리고 다채로운 색과 질감뿐 아니라 심지어 냄새나 음악을 담을 수도 있다. 소시민워크에서 발행하고 있는 '아자씨의 냉면여행'과 '히든 포레스트'는 플립북이다. 학창시절 수업을 들으면서 교과서 오른쪽 같은 위치에 조금씩 변화를 준 그림을 페이지마다 그려 넘기면 애니메이션 효과가 만들어지는데 책방을 찾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요즘은 이 같은 다채로운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 책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표현 방식을 찾는 모험, 그런 것이 더 멋진 책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다. 영국 출판사 비주얼 에디션스가 발행한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Tree of codes'는 구매하고자 하는 이들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재발행하기만을 기다린다. 없어서 살 수 없는 책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책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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