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남편의 몸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아침밥을 대충 먹고 씻고 출근하려는 남편의 모습은 여느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분명히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어제 마신 술의 영향이라기엔 평소와 너무 다르다. 잦은 술자리에도 다음 날 보인 과거의 행동들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우선 회사에 출근하지 말고 병원에 같이 가보자, 정 결근하기 싫으면 가서 진료라도 받고 생각해 보자"고 남편을 설득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쉽사리 꺾을 수 없는 고집이었다. 결국 한바탕 서로를 향해 '총격전'을 벌이고 말았다. 뭔지 모를 적막과 분노, 원망, 걱정이 고요함과 뒤섞여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식탁 위를 떠돈다. 남편은 이 묘한 분위기를 못 이겨서인지 아침식사를 그만두고 밥상을 떠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화장실로 들어간 남편이 수도꼭지를 트는 소리가 들린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흐르는 물소리가 그의 청각을 어지럽힐 때, 화장실과 가장 먼 베란다로 나간다. 평소에 그렇게 싫어하던 매캐한 담배 냄새와 희뿌연 연기가 베란다를 떠돌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열고 119 버튼을 누른다. 주소와 환자 상태를 묻는다. 대답은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게 했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베란다 창 너머 욕실을 힐끗 보았다. 아직 남편은 나오지 않았고 눈치 채지 못한 듯하다. 잠시 후 남편이 어정쩡한 걸음으로 욕실에서 나와서는 회사 근무복으로 갈아입는다.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베란다로 뛰어갔다. 출동한 119대원이었다. 다행히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한다. 집 주소와 현재 환자 상태를 묻기에 남편 눈치를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통화가 종료되고 다시 거실로 들어간다. 남편이 나를 힐끗 보며 아침부터 무슨 전화냐고 묻는다. 보험회사 직원이라고 둘러댄다. 그는 다시 옷을 여미면서 출근할 채비를 한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몇 시에 집에 들어와?" "가져갈 물건은 다 챙겼어?" 남편은 평소와는 다르게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척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을 살짝 부축해 같이 내려갔다.
남편이 차에 오르려 한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구급차가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구급차를 향해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남편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구급차를 번갈아 보더니 그제야 눈치를 채고는 차에 타선 내리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창문을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그러고는 구급대원은 남편과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뒤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남편을 설득한다. 하지만 남편은 막무가내다. 그래도 병원에 꼭 가야 한다고 하며 구급대원들과 함께 남편을 다독여본다. 설득과 기다림의 시간은 계속 흘러 30여 분이 지났다. 구급대원들도 이제는 지쳐 보인다. 너무 미안했다. 구급대원은 마지막으로 설득해보기로 한다.
"선생님, 잠시 병원 가서 검사만 받고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하십시다. 만약 병원에 안 가서 악화되면 자식들도 얼마나 힘들어지겠습니까…."
이 말에 남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챈 대원들은 그를 안고 차에서 내려 잠시 걸어보자고 권유한다. 확인만 하고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운전석에서 그를 부축하며 내렸다. 구급대원은 남편에게 하얀 주차 선을 따라 앞을 향해 똑바로 걸어보라고 주문했다. 동시에 구급대원은 차량에 꽂혀 있던 키를 얼른 아내에게 건넨다. 한 걸음 두 걸음, 비틀비틀, 술 취한 사람처럼 몹시도 불안한데도 정작 자신은 괜찮은 표정을 지으며 어눌한 말투를 이어간다.
"선생님! 본인 의지와는 다르게 상태가 좋질 않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같이 병원 가서 왜 그런지 검사 한 번 받아봅시다"라고 재차 의향을 물으면서 구급대원들은 남편을 밀 듯이 구급차로 이끌었다. 남편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대원들 손에 의지하며 구급차에 오른다.
나도 대원들의 안내를 받고 차에 몸을 실었다. 그제야 차가웠던 대기의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 같다. 남편을 위해, 아니 더 나아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구급대원분께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들은 발만 동동거리며 걱정하던 나에게 가벼운 목례와 엷은 미소로 괜찮을 거라고 되레 위로하기까지 해 주었다. 출근길의 혼잡한 도로를 묵묵히 헤치며 병원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아침 햇살에 비친 구급대원님들 왼쪽 가슴의 은색 명찰이 더욱더 눈부시게 빛난다. 나는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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