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두 아저씨 이야기

며칠 전 한 아저씨가 편집국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서성거리던 그 아저씨는 책상에 앉은 내게 "상담 좀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편집국 안에 조용한 곳으로 모셔 이야기를 들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는 이 아저씨는 자신이 자활근로 중에 있었던 억울한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한 시간 동안 내게 이야기하면서 자주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말씀이 끝난 뒤에는 억울함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 이야기 말미에 내게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제 이야기를 취재하셔도 되고 안 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 하소연을 쭉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편집국을 떠난 뒤 지난봄 집에서 쉬고 있던 중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기억났다. 취재 때문에 만났던 한 아저씨의 전화였다. 이분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곤궁하게 살고 있던 분이었다. 혼자 살고 있던 이 아저씨는 너무 외롭고 힘든 마음에 보건복지부 콜센터에 상담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나 본데, 그걸 보건복지부 콜센터 직원이 자살 기도를 걱정해 경찰에 연락한 모양이었다. 통화가 끝난 직후 어디서 얻어온 과일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하필 과일 깎던 과도를 들고 현관문을 열었던 그 아저씨는 마치 자살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경찰은 사람을 구한답시고 이 아저씨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경찰서 조사까지 받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 그 아저씨는 억울한 마음에 일요일 밤늦게 내게 전화를 해 억울함을 풀어낸 것이다. 그 아저씨도 1시간이 넘는 긴 통화의 말미에 "이 억울함을 풀 데가 없어 속 끓이던 중에 책상 위에 기자님 명함이 보여서 전화를 드린 겁니다"라며 "그래도 이렇게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게 억울함과 하소연을 풀어낸 두 아저씨들의 마지막 말이 특히 가슴을 쳤다. 아저씨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는 곳이 얼마나 없었으면 자신보다 젊은 기자에게 '기자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붙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리고 그분들은 내가 이야기를 들어드린 것만으로도 감사해했지만 그분들의 처지나 문제는 기자 개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 아저씨들이 했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나는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가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기자는 사실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일을 다 했다고 보기 어려운 위치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그냥 들어주기만 했던' 나의 태도와 '들어주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의 처지가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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