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새論새評] 세월호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1957년생. 중졸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1957년생. 중졸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책임자 문책·장관 교체·조직 개편…

대형참사 때마다 정부의 같은 대응

돌고래호 사고 역시 골든타임 놓쳐

"해답은 현장에" 원인 진단부터 해야

지난해 세월호 사고 후 박근혜 대통령이 후속 대책을 발표했을 때였다. 해경을 해체하고,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를 해체 수준으로 기능 조정하는 내용의 국가 대개조 계획이 나왔다. 해경, 안행부, 해수부 등의 재난 대응 기능을 모은 국민안전처라는 이름의 거대 조직을 만드는 방안이 불과 며칠 사이에 만들어졌다.

한 칼럼을 통해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나의 생각을 밝혔다. 열이 나는 원인 진단도 하기 전 처방부터 내놓는 의사와 같다는 얘기였다.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과거처럼 판에 박은 대응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대형 사고가 생길 때마다 책임자 문책, 총리 경질, 장관 교체, 조직 개편 등으로 부산하다. 정부 부처를 이리저리 바꾸고, 공무원 조직과 예산을 늘리고, 그러면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단한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그런 착시현상의 결과는 항상 같았다. 철저한 원인 분석과 성찰이 빠진 표피적인 대책은 다음 대형 사고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었다. 그런 미봉책이 세월호 사고를 낳았고, 졸속 처방은 또 다른 사고를 예비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런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최근 추자도 인근에서 전복된 낚시 어선 돌고래호의 사고가 그것이다. 사망자의 규모나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다르지만 사고 경위와 처리 과정은 세월호 사태와 판박이다. 이른바 안전불감증으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안전 무시 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거친 바다에 나가는 작은 배가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확보하지 않고, 낚시 승객들은 구명조끼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몇 명이 탔는지 누가 탔는지 확실히 기재된 명단조차 없다. 사고 후 구조를 위한 해경의 활동 역시 우왕좌왕하면서 이른바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모습이 그때와 꼭 닮았다. 비대한 중앙정부 조직은 먼 거리의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 수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인 장비들이 막상 사고가 닥치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손쉬운 대로 정부를 비난하며 모든 책임을 정부에 미룬 채 나와 우리는 책임을 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엄청난 참사로부터 배운 게 없고 바뀐 게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대한 조직을 갖추고, 예산을 늘리고, 사고 현장에 직접 출동하여 구조하는 영웅적 정부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사고를 정부가 책임질 수도 없다. 선행 사고의 문제점과 원인을 파악한 후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게 정부의 할 일이다. 실핏줄처럼 깔려 있는 지방자치단체, 각종 주민조직 등과 철저히 연계하여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 사고가 생길 때마다 대책본부를 만들고 상황실을 갖추고 보고만 주고받는 등 식상한 일만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정부가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책임자 문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조직과 예산 타령만 하는 공무원들을 국민은 못 미더워한다. 원인 진단부터 철저히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세부 사항부터 하나하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박 대통령도 "해답은 현장에 있다"고 강조하지 않는가.

요즘 지하철을 타면 화재 등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의자가 불연재로 교체되었고, 소화기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 지하철 출입문은 비상시 안에서 열 수도 있고, 승무원과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며, 외부 연락 전화번호까지 쓰여 있다. 문제가 생기면 다음 역에서 즉각 근무자들이 출동해서 조치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불연재, 소화기, 출입문, 비상연락망…. 공무원 조직과 예산이 늘어나서 이런 대비책을 갖출 수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앞서 일어난 사고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개선책을 마련한 현장 중심 사고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