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감과 히어링

청문회(聽聞會)는 자세히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영어에서도 히어링(Hearing)이라고 한다. 청문회의 출발은 1689년 영국 의회다. 1652년 아일랜드가 영국에 완전 점령된 뒤 가톨릭 신자들이 개종을 요구받자 폭동을 일으켰다. 진압에 나섰지만 실패하자 그 책임 규명을 위해 처음 청문회가 열린 것이다. 세계 정치사에서 최초의 국정조사다.

이런 관례를 따른 미국은 우리와 달리 국정감사 제도가 없다. 국정감사는 의회에 설치한 감사원(GAO'의회감사국)에서 정부 회계감사와 평가'수사까지 도맡고 있다. 대신 상'하원은 입법과 감시'조사'인준'현장 청문회 등 다양한 의회청문회(Congr essional hearing)를 수시로 열어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행정부와 국가기관들을 견제한다. 미국의 각종 청문회에서 상'하원 의원은 수사관이나 다름없다.

특히 미국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입법되는 사례가 없을 만큼 청문회는 의회 활동의 중심축이다. 정치학자 조지 갤로웨이가 "청문회는 미국의 모든 공공 문제에 대한 정보의 금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특정 사안의 전모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자리다. 의원의 호통과 질타만 있고 증인 답변은 아예 실종한 우리 청문회나 국정감사와는 천양지차다.

요즘 여의도가 국감으로 분주하다.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둔 탓에 국회가 맡고 있는 국정감사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TV'신문을 통해 국감을 지켜보는 국민은 울화통이 터진다. 다음날 신문에 어떤 웃기지도 않은 국감 장면이 나올지 궁금해질 정도다.

그저께 안전행정위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유대운 의원이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모형 권총을 건네며 조준 격발해보라고 종용했다가 항의가 빗발치자 유감을 표명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시킨 의원도 문제지만 시늉을 한 경찰총수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알 만한 사람이 말이야…' 식의 국감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갈수록 삼류 코미디판으로 전락해 쓴웃음만 나온다.

국정감사는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와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이다. 헌법에 명시한 국정감사권이 근거다. 국회가 바르게 권한을 행사해야 할 국감인데도 이런 신파극이 없다. 솔직히 국회를 피감기관으로 세우고 싶은 게 국민 심정이다. 의원 신분을 핑계로 온갖 나쁜 행실만 보여주는 여야 국회의원들을 증인석에 앉혀 호되게 추궁하면 과연 어떤 표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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