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갓바위의 효험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계단을 오른다. 지난주에는 팔공산 갓바위에 뒷길로 올랐다. 산허리까지 버스와 승용차가 실어다 주어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빠른 길이라고 나는 흔히 갓바위에 갈 때면 뒷길을 이용하곤 했는데 석불을 만나러, 아니 기도하러 갈 때는 뒤로 가면 효험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오늘은 천삼백 개가 넘는 계단을 디디며 앞으로 올라갔다.

어떤 이는 작은 가방을 메고 등산복 차림으로 가기도 했으며 더러는 운동화에다 편한 복장으로 마실 나오듯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간소복 차림에 운동화 질끈 동여매고는 천천히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다 잊어버리고 자연에 몸을 맡긴 것이다. 걸으면서 숲 속에 일렁이는 바람과 이야기하고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헉헉 숨이 차오르는 걸 참으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팔각정까지 왔다.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독경 소리 잠잠하니 숲 속의 새들도 늦잠을 자는지 천지가 쥐죽은 듯하다. 산을 오르면서 벌써 다 용서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간의 힘들었던 일상과 바라고 싶은 것들을 부처님께 다 아뢰고 나니 마음이 새털 같다.

어느새 석불 앞에 도착하니 합격기원 발원, 건강기원 발원, 취업기원 발원 등의 촛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엎드려 절하면서 각자의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회색 바지를 입은 그늘진 저 젊은 새댁은 무엇을 빌었을까? 등산복 차림의 노신사는 또 무엇을 아뢰었을까?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저 아주머니는 무엇을 염원했을까? 저마다의 다른 색깔로 와서 각각의 기도를 뿌리며 마음 가볍게 산을 내려가는데 석불은 힘에 겨워 비스듬히 눕고 있다. 저 많은 근심 덩어리와 저들의 소망을 다 들어주기엔 석불도 감당하기 어려운지 수심이 가득하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과정에 그들은 벌써 용서받고 구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가슴 한편에 꾹 눌러 다시 싸 갖고 가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마음 하나 끝내 버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도 물론 있다.

산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또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풍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수양하러, 요샛말로 몸과 마음의 힐링 차원에서 갓바위에 오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문에는 이곳에다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한다. 팔공산 갓바위에 오르는 이들의 이유를 알기는 하는 것일까? 단지 석불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에서 용서와 인내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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