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대구 정치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1971년 선거 혁명의 본산지였던 대구

1980년대 들어 현 집권 여당 텃밭으로

전략공천 통해 현역의원 물갈이 가능성

친박 정서에서 벗어나 대구 목소리 내야

1958년 총선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을 때 치른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야당이던 민주당은 79석을 차지해서 여당이던 자유당을 바싹 뒤쫓았다. 민주당은 서울 등 도시 지역에서 많은 당선자를 내어서 전형적인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을 초래했다. 대구도 민주당 당선자를 대거 배출해서 '야도'(野都)라는 말을 들었다. 민도가 높은 도시 유권자들이 야당을 지지했던 1958년 총선은 4'19를 예고한 것이었다.

비슷한 현상이 1971년 총선에서 또 일어났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그해 5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89석을 차지했고, 여당이던 공화당은 11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신민당은 도시 지역에서 대거 승리했다. 서울에선 공화당이 1석을 얻는 데 그쳤고, 대구에선 이효상 국회의장 등 공화당 중진들이 고배를 마셔서 충격을 주었다. 1971년 총선은 박정희 대통령이 헌정을 포기하고 유신으로 가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들어서 영호남 대립 구조가 고착화하자 대구는 민정당에서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이어온 현 집권 여당의 텃밭이 됐다. 그러다 보니 대구가 1958년과 1971년에 있었던 선거 혁명의 본산지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물론 1980년대 이후라고 해서 대구 유권자들이 무조건 여당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총선에서는 자유민주연합과 무소속 후보가 대구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고,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은 야인 생활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구는 박근혜정부를 탄생시킨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박근혜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고, 대구 정치도 '포스트 박근혜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은 비운에 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 그리고 거기에 뿌리를 둔 친(親)박근혜 정서에서 서서히 벗어나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유승민 의원이야말로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대구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와 복지 정책에서 유 의원이 보여준 새로운 패러다임은 앞으로 대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야당 의원들로부터도 존중을 받았으며, 동료 의원들에 의해 직접 뽑힌 원내대표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을 때도 유 의원이 앉아 있을 테이블을 제일 멀리 배치했는가 하면, 최근에 대구를 방문했을 때에도 의원들을 초청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종합해 보면 유 의원이 과연 대구에 지역구를 두고서 정치를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 되는 대구에서 4선이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뿐더러, 대구는 종종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현역의원 '물갈이'를 했던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이 힘을 얻는다.

몇몇 언론은 유 의원 등 현역 의원 대신에 청와대 비서관들이 대구에서 공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며칠 후에는 청와대의 복심이라는 윤상현 의원이 대구'경북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연히 박 대통령을 따라 대구를 방문한 비서관과 장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십상시'라는 비아냥을 듣는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이런 발상이 가능한 것은 물론 대구'경북에선 새누리당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대구는 유 의원을 내 보내고 '십상시'를 맞아들이는 꼴이 되고, 그러면 대구 유권자 전체가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유승민 의원이 집권당의 원내대표로서 대통령을 아프게 비판한 것은 분명 지나쳤다. 하지만 대통령이 과연 원내대표를 그렇게 내칠 수 있으며, 또 그가 떠난 빈자리를 청와대가 마음대로 요리해도 되는 것인지는 별개 문제다. 지금부터는 대구 유권자들, 특히 식자층이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박근혜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웬만한 것은 침묵했더라도 이제는 할 말을 해야 한국 정치의 물길을 몇 번이나 바꾼 대구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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