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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보다 '일본서기' 더 믿는 한국사 교과서…『위험한 역사 시간』

위험한 역사 시간

이주한 지음/인문서원 펴냄

'독도는 일본 땅이며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는 문구를 교과서에 버젓이 싣는 등 일본의 독도 도발은 이제 위험 수위에 달했다. 이미 2007년 동북공정을 마무리한 중국은 '선사시대 동북공정'이라는 새로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원류이기도 한 요하문명을 통째로 차지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알아서' 자국의 역사 공간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에 급급하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 대한 한탄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영국의 역사를 쓰면 영국사가 되어야 하고, 러시아 역사를 쓰면 러시아사가 되어야 하며, 조선의 역사를 쓰면 조선사가 되어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그런데도 우리 역사 교과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일제의 황국식민사관과 중화주의를 받아들여 스스로를 비하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이 같은 참담한 행태는 좌'우가 따로 없다. 최근 역사학계에 이어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역사 교과서 이념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위 역사학자라는 사람들과 정치인들이 제정신(?)인가라는 의문조차 든다.

저자의 이야기는 역사를 보는 관점인 사관(史觀)에서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민족, 모든 장소에는 고유한 문명과 역사가 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잊기 십상인 명제를 먼저 일깨운다. 그리고 모든 민족의 고유한 문명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열린 시각과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등 도구가 아닌 인간 중심의 사고를 먼저 제안한다.

그런데 한국사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사회학사를 새롭게 쓴 석학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가 1980년대부터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한국 고대사회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모두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인들의 연구 결과가 그대로 '한국의 역사'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던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30명의 논문들을 치밀하게 비판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학술 성과를 거뒀다. 일본 출판사들은 최 명예교수의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본 우익의 테러 위험 탓에 출판하지 못했고, 한국 역사학계는 하나같이 침묵했다. 일본의 반응은 이해가 가지만, 한국 역사학계의 반응은 도대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런 결과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에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해 서기 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기록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라고 한다' 등의 표현을 써서 '믿기 힘들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내는가 하면, 중국에서 온 망명객 위만이 세운 위만국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버젓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기록인 나 기록을 무시한 것은 물론,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져 왔다는 조선총독부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식민사관의 '단군조선 부정하기'가 스며들어 있다. 와 기록은 스치듯 언급하면서 '중앙집권국가' '기틀' 등의 단어를 교묘하게 배치해 삼국의 건국 연대를 몇백 년씩 잘라먹고 있다. 게다가 조선왕조에 버금가는 500년 역사를 가진 가야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한다. 심지어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임을 증명하는 유적'유물에도 불구하고 요하문명 등 우리 민족의 원류인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단정 짓는 교과서도 있다.

같은 우리 사서보다는 같은 중국과 일본 사서를 더 존중(?)하여 그것에 따라 서술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 역사 교과서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초기 기록 불신론이다. 기록과 일본사서 기록이 일치하지 않으면 무조건 가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꿰맞추기 위한 터무니없는 조작론에 불과한데, 우리 역사 교과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그것을 수용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간사를 역임한 저자는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대변인과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국회에서 벌어지는 역사 교과서 이념 논쟁이 '한가하고' '한심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41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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