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가 고민이 있으니 좀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 고민이라는 것이 집에서 놀고 있는 자기 아들 이야기다. 대학 졸업하고 2년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단다. "젊은 놈이 패기도 없고 모험심도 없어. 똥장군이라도 지고 나설 생각은 않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고 말이야. 한심해서 쥐어 패고 싶을 때가 많아." 문제의 그 '젊은 놈'은 필자도 자라는 모습을 줄곧 보아왔기 때문에 조카처럼 여기는 청년으로, 그렇게까지 맥없는 젊은이는 아니다. 필시 자기 나름의 생각도 있고 욕심도 있을 터이다. 아비 된 마음에 안쓰럽고 답답한 것은 짐작이 가지만, 스스로는 해 본 적도 없는 남의 자식 농사를 대신 지어줄 수야 없지 않은가. 다 잘될 것이니 너무 보채지 말고 좀 두고 보라고, 속 빈 강정 같은 위로나 해 줄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간의 곡절이야 어떠하든 노사정 회의가 일단 타협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자못 기대가 된다. 우리 문화는 타협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더욱이 이번의 타협안에 대해서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 모두가 불만이라고 하니 더욱 의미가 깊다. 잘 이루어진 타협일수록 이해관계자들이 다들 조금씩 불만인 법이기 때문이다. 정부 체면만 세워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싸움만 하다가 끝내는 것보다야 월등히 나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문외한인 필자는 청년 일자리 창출 같은 지난한 문제에 훈수를 둘 만한 주제가 되지 않는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자식조차 없으니 입을 댈 자격도 미달이다. 하지만 비전투원이라고는 해도 일자리 전쟁이 한창인 이 사회의 일원이고, 취직 걱정을 하는 젊은이들 가운데는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지인들도 있다. 일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의 시각이 다소나마 쓸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굳이 거들자면, 당사자인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의견을 참고하자는 뜻이라기보다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아버지로서, 형이나 삼촌으로서 그들의 고민과 포부를 정면으로 받아 주고 긍정해 주자는 뜻이다. 경제지표나 지지율에만 기준하여 그들을 본다면, 그들도 기성세대를 밥그릇 싸움의 경쟁자로 보고 그렇게 대할 것이다.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고려는 물론 불가결하다.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식들이고 동생들인 젊은이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무엇을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고 정리해 버리면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이 된다. 그들의 꿈이 황당하고 비현실적이고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더욱 좋다. 기성세대가 줄곧 노래를 부르지만 잘 이루지 못하는 저 변화와 혁신의 원동력이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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