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낯뜨거운 정치인들의 잇단 성추문…스스럼없는 권력자 "내가 누군데…"

법원서도 '혐의 없음'·집행유예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행정부의 수반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인식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위치가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 취임 이후 남성 정치인들의 성추문은 낯뜨거울 정도로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설화(舌禍)가 많았던 이명박 정권의 성추문 논란과 달리 박근혜 정권의 성추문은 범죄의 영역까지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권 기간 성추문 일지

박근혜 정권의 첫 번째 대형 사건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이었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3월 강원도 원주의 건설업자인 윤모 씨의 별장에서 최음제를 복용한 여성 여러 명과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 전 차관은 이 사건으로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지 6일 만에 차관직을 사퇴했다. 두 달 뒤인 그해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의 여성 인턴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다. 윤 전 대변인은 2013년 5월 박 대통령의 방미 중 주미 한국대사관 여성 인턴직원 A씨의 엉덩이를 만지고, 호텔방으로 A씨를 불러 알몸을 보여주는 등의 성추행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격 경질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정치인의 성추문은 지난해 9월 다시 일어났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골프를 치던 중 담당 캐디 B씨의 신체 일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올해는 대구에서 일이 터졌다. 심학봉 의원이 지난 7월 13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보험설계사인 40대 여성 C씨와 강제로 성관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심 의원은 사건이 문제가 되자 지난달 3일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심 의원의 국회의원 제명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한 상태다.

◆'배꼽 아래 인격이 없다'지만

정치인들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데는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영국 통신사 '로이터'는 2011년 당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스트로스 칸 IMF 총재의 성추문 스캔들이 터졌을 때 정치인들의 성추문이 일어나는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로이터는 당시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평범한 사람들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는 권력 자체의 속성과 정치인들의 빗나간 모험심, 자아도취 등을 성추문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당시 이 분석은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통했는데, 앞서 말한 정치인들의 성추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도 이 분석은 유효하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아끼던 인사였다. 따라서 당연히 권력의 속성에 젖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여성 인턴직원에게 스스럼없이 성추행을 가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딸 같아서 그랬다"는 변명이 나올 수 있었던 심리적 원인이기도 하다. 김학의 전 차관과 심학봉 의원의 경우는 극단적 모험을 서슴없이 강행하는 경향이 화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 로이터는 섹스 중독 치유 분야의 전문가인 로버트 웨이스의 말을 인용, "강인함과 대담함, 결과를 무시하는 정신은 강력한 지도자를 만들 수 있지만 그들이 자신도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기에 더해 정치인들의 성추문에 대해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흔히 '배꼽 아래에 인격이 없다'는 말로 표현되는 이 분위기는 정치인들이 숱하게 일으켰을 성추문 문제를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가십성 이야깃거리로 전락시켰다. 여성 정치인들의 활동이 늘어나는 최근에서야 정치인들의 성추문 문제는 도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제로 겨우 인식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더 문제인 것은 여성 정치인들 또한 남성 정치인들이 일으키는 성추문 문제에 눈감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전직 기초자치의회 의원은 "의원들과 방이 있는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한 의원이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치마가 짧으니 보기가 좋다'며 팁을 줬는데, 이를 본 여성 의원도 '그래야 서비스를 더 잘해줄 것'이라고 말하더라"며 "결국 짧은 치마의 여성 종업원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 것처럼 느껴져 보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학봉 의원의 성추문 논란 당시 새누리당 일부 여성 의원의 입에서 "대한민국 남성 중 안 그런 사람 있느냐"는 옹호성 발언이 나온 이유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일벌백계, 제대로 해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처벌 법률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성추문의 가해자인 김학의 전 차관은 해당 사건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고,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판결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한 상태고, 심학봉 의원에 대해서도 법원은 '혐의 없음'으로 판결했다. 개인적 망신은 차치하고라도 결국 법은 성추문을 일으킨 정치인들에게 관대했다. 재발 방지 대책이 계속 논의되지만 크게 소용이 없다. 국회는 2013년 여성발전기본법 일부개정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국가기관의 성희롱 방지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했는데, '성희롱 방지조치 점검결과 언론 공표 의무화' '공공기관 성희롱 실태조사 법률 명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2013년 이후에도 정치인들의 성추문은 끊이지 않았다.

임운택 교수(계명대 사회학과)는 정치인들의 성추문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도덕적 자질을 평가하는 부분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사실과 성추문을 일으킨 정치인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점도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한 원인"이라며 "시민사회가 후보 선출 과정부터 지속적으로 도덕적 자질을 감시하며 검증된 후보를 뽑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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