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혁신의 속살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공천권 국민한테 주고 기득권 버리기"

여당이든 야당이든 레퍼토리는 늘 같아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에 목맨 정당

시민이 공천권 행사, 정당은 왜 필요한가

우리 정당들은 괴물이다. 전 세계 문명국의 정당 가운데 우리 정당들 같은 정당은 없다. 단순히 이념과 상관없이 뭉쳤다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처럼 공당(公黨)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만들고 허무는 일을 반복하는 나라는 후진적 민주정(民主政)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탓에 10년 역사의 정당이 없다. 그런데 정작 진짜 문제는 정당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私益)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정당이 정당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단지 권력 획득에만 혈안이 된 패거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정당이 국민들에게 복마전으로 비치고 정치판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보이는 이유다.

그래선지 우리 정당처럼 밥 먹듯 '혁신'하는 정당은 어디에도 없다. 먼저 새누리당을 보자. 새누리당은 보수층의 지지를 받던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나온 작품이다. 위원은 당원이 아니거나 심지어 반대진영에 있었던 분도 있었다. 그들은 정책을 좌클릭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아예 당에서 보수를 빼내겠다고 했다. 광고 전문가를 영입해 당명을 뜻도 불분명한 '새누리'로 바꿨다. 충격적인 건 당 색깔을 좌파가 쓰는 붉은색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도 혁신은 계속됐다. 작년 7월엔 '새바위'(새누리를 바꾸는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대 이준석 씨를 위원장에 앉히고 그 아래 4선과 재선의원들을 포진시킨 건 누가 봐도 난센스였다. 게다가 교수와 시민단체 대표, 전업주부와 회사원이 위원이었다. 도대체 당의 147명 의원들이 얼마나 무능했으면 정치와 무관한 주부와 회사원이 당을 바꾸도록 했겠는가? 얼마 뒤 이번엔 보수혁신위원회를 떡하니 만들었다. 아마도 그 혁신위가 한 게 뭔지를 아는 국민은 얼마 안 될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당에서 보수를 빼낸다고 한 지 얼마 되었다고 '보수를 혁신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당 회의장 벽에 보란 듯이 붙여놓았다.

야당도 '혁신'을 계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총선 전 장외 친노그룹인 혁통(혁신과 통합)이 민주당과 합친 것부터 혁신이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혁신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와 공천 독식 외엔 별 게 없었다. 그 뒤에도 민주당은 새 정치를 한다던 안철수 세력과 다시 '합당' 절차를 밟았다. 당연한 것인 양 두 대표는 당명부터 바꿨다. 이번에도 혁신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왔다. 놀라운 건 새누리당이 버린 파란 색깔로 당색을 바꾼 것이다. 그 지도부가 선거 패배로 물러나고 등장한 문재인 대표가 다시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늘 하던 버릇대로 책임론이 불거졌다. 문 대표는 정해진 수순처럼 또 혁신을 들고 나왔다. 혁신위원회가 꾸려졌고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두 번 다 낙천(落薦)됐던 김상곤 위원장이 혁신의 전권을 잡았다.

이쯤 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온 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레퍼토리는 늘 같다. 13년 전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나왔던 레퍼토리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갈 때 나왔던 메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기득권을 버리고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오로지 국민만 보고 정치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솔직히 말해 문제는 공천권이다. 여당 대표는 '당 대표로서 공천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오픈프라이머리에 목을 맨다. 야당은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제를 폐지하고, 이제 계파와 패권은 없다면서 100%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국민공천단을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오픈프라이머리든 국민공천단이든 과연 그게 현재 당권을 쥔 두 대표가 기득권을 버리는 길일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더욱이 정당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반시민이 전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한다면 그 정당이 왜 필요한가? 그게 위헌이라는 사실을 두 대표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사익에 눈이 멀어 눙치는 것일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