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체 포털사이트 통해 생중계
#방송시간 동안 38만4천여 명 시청
#장시간에도 게스트 없이 무대 채워
#카피 불가능한 행보로 클래스 입증
뮤지션 이승환이 또 한 번 자신의 공연 기록을 경신하며 역량을 과시했다. 이번엔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연 전체를 생중계하며 온·오프라인에 포진된 팬들과 호흡했다. 결과는 성공적. 19일 오후 4시께 서울 광진구 악스코리아에서 시작된 '빠데이-26년' 콘서트는 인터미션을 포함해 이날 오후 11시에 막을 내렸다. 게스트도 없이 무려 6시간 20여 분 동안 66곡을 열창하며 2012년 같은 타이틀의 '빠데이' 공연 중 세운 5시간 40분이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터미션을 포함하면 7시간에 달한다. 이 공연을 생중계한 포털사이트 측에서도 만족스러워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방송시간 동안 38만4천859명이 시청했으며 팬들이 성원의 뜻에서 보내는 '하트'의 숫자도 1천60만 개에 육박했다. 단순히 장시간 공연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보여준 무대의 퀄리티와 50대 노장 뮤지션이 보여준 놀라운 역량, 팬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 투혼에 감복해 글을 남긴다.
◆생중계된 50대 가수의 넘치는 열정
필자는 이승환의 오랜 팬이다. 정확히 말하면 1989년 발표된 데뷔 앨범을 이듬해부터 뒤늦게 좋아하기 시작했고 2집이 나왔을 무렵 이승환의 '빠'가 됐다. 각종 공연을 따라다녔고, 이승환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팬레터까지 날려본 적이 있다. 취재기자로 활동하며 인터뷰어를 자처해 잠시나마 친분을 쌓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다시 이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지금 쓰는 이 글이 객관적인 평자의 입장에 충실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글에는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대중문화칼럼니스트의 어쩔 수 없는 주관이 꽤 반영됐음을 밝힌다.
이번 공연 '빠데이-26년'은 이승환이 흔히 광팬, 즉 '빠'들과 함께하는 '돌발 콘서트'의 형식에 살을 붙여 사이즈를 불렸다. 그리 크지 않은 홀 하나를 빌려 '빠'들이 공유할 수 있는, 히트곡 위주로 진행되는 연말 대형공연에서 들어보기 힘든 곡들까지 훑어보는 '마니아를 위한 공연'이다. 여기에 포털 생중계를 감안해 잘 알려진 곡들을 라인업에 포함시키며 다수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려 애썼다. 단 과거 '무적전설' '끝장' 등 대형 공연무대에서 보여주던 화려한 효과와 쇼 대신 음악 자체에 집중해 듣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장시간의 공연임에도 게스트 한 명 쓰지 않고 이승환과 그의 밴드가 오롯이 무대를 메웠다. 일반 대중이 혹할 만한 대형 공연의 포맷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마니아 공연의 형식으로 생중계 및 기록 경신에 도전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비주얼을 보여주되 스케일이 아닌 꾸밈없는 움직임과 표정을 더 생생하게, 대신 사운드에 대한 집중도는 높이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공연은 '좋은 날'로 시작해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등 1집의 히트 넘버를 소프트하게 편곡해 가벼운 느낌으로 들려주며 초반 무대를 열었다. 그 사이에 '내게만 일어나는 일' 등 진중한 느낌의 곡과 '제리제리 고고' '덩크슛' 등 흥겨운 노래를 섞어가며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부가 끝날 때까지 '천 일 동안' '가족' '화려하지 않은 고백' 등 유명 발라드 넘버를 소화하고 그 사이에 '내가 바라는 나' 등 마니아들이 기억할 만한 노래를 부르며 기존 팬들과 추억을 공유했다.
인터미션을 지나 2부로 접어들면서 전매특허인 록 비트를 강화해 팬들과 공유하는 용어처럼 '쳐 달리기'를 시작했다. '루머'로 시작해 '물어본다' '퀴즈쇼' '멋있게 사는 거야' '리와인드' '붉은 낙타' 등 완성도 높은 라이브로 들려주는 이승환표 록 넘버가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반나절 내내 진행된 공연, 가수의 목소리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지친 기색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전곡을 연주한 밴드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 혼신의 힘을 다해 스틱을 휘두르는 드러머의 일그러진 표정이 엿보였지만 오히려 스틱 끝에 감정이 실려 듣는 이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콘서트 전날 2시간에 걸쳐 펼친 전야제 공연까지 포함해 이틀간 러닝타임만 총 8시간을 훌쩍 넘긴 혈기왕성한 음악 쇼. 온라인 생중계로 공연을 지켜보던 30, 40대 팬들은 '이승환, 나만 가수다' 등의 댓글을 달며 열광했다. 현장을 찾지 못한 아쉬움에 박수 대신 해당 앱에서 통용되는 응원의 상징 '하트'를 쏴 무려 1천만 개를 넘겼다. 가수의 열정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 시간만큼은 팬들도 처음 이승환에 열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프로 뮤지션의 가학적인 자기실험
사실 이승환의 '빠'들에게 있어 장시간의 공연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이미 이승환은 1990년대 중반부터 3시간 30분에서 4시간에 달하는 무대를 소화해 화제가 됐고 이후로도 기본 3시간, 많게는 5시간에 걸친 공연을 자주 기획했다. 한때 '긴 시간이 소요되는 대형 콘서트를 자제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이승환의 무대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공연의 포맷이 조금씩 달라질 뿐 항상 한 곡 한 곡을 공들여 편곡하고 100% 라이브로 연주하고 부르며 호평을 자아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체력을 걱정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목이 안정돼 힘 있고 깊이 있는 음색을 냈다. 보이지 않는 불꽃을 동반해 몸 전체를 태워버리기라도 하는 듯 무대 위 이승환은 죽기 살기로 노래했다. 공연 말미,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와 후기를 전하며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도전"이라고 말했지만 이 또한 '엄살'에 불과하다는 걸 필자는 안다. 체력 등의 이유로 수차례 러닝타임이 길거나 규모가 큰 대형공연을 고사하겠다고 밝힌 게 수차례. 그러고도 결국엔 또 무대에 투자하겠다며 온갖 장비를 사들이고 마치 생명력을 실험하듯 러닝타임을 늘려 팬들과 호흡하며 현재까지 온 뮤지션이 이승환이다. 아마도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이승환은 무대 욕심을 버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승환이 가요계에서, 또 대중문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참으로 독특하다. 1980년대 후반 발라드곡을 히트시키며 당대의 톱스타로 발돋움했고 록음악의 비중을 높이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고집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장르를 밀고 나가는 동안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곡 작업과 무대에만 신경 쓸 뿐 언론홍보를 등한시해 만만찮게 손해를 봤다. 신승훈과 이승철이 대대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알리며 이미지 메이킹을 할 때 이승환은 록페스티벌과 소극장 무대에 오르며 자위했다. 방송에서 자주 노래하지 않아 인지도는 하락했고 억울하게 가창력까지 저평가되는 설움을 당하기도 했다. 국내 대중음악 공연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킨 공신이지만 무심히 기획과 포맷을 도용하는 이들로 인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이번 공연처럼 카피 불가능한 행보로 이승환은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한다. 장시간 고집스레 일궈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국내에 작사, 작곡뿐 아니라 프로듀싱에 공연기획까지 하며 매회 3, 4시간의 공연을 거뜬히 소화하는 뮤지션은 이승환이 유일하다. 시간이 지나 기운이 떨어지고 목소리가 변해 아쉬움을 주는 가수들이 있는 반면, 이승환은 갈수록 느는 기량을 과시하며 놀라움을 준다.
어차피 남 말 안 듣는 고집불통 뮤지션이니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터. 홍보에 무심할 것이고 대중성보다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게 확실하다. '열정'이란 흔한데다 여기저기 차고 넘쳐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은 단어다. 그런데도 이승환에 이르러 대체할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변질을 거부하는 베테랑 뮤지션의 투혼에 늙수그레한 팬들의 심장 박동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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