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480호를 아시나요?'
1955년 5월 한국은 미국과 농산물 원조협정을 맺었다. 식량난으로 어쩔 수 없었다. 34년 11개월 16일의 일제 식민에서 벗어난 광복 기쁨도 잠시, 북한 남침 뒤 폐허의 국토로 국민은 굶주림에 배를 곯아야 했다. 미국은 1954년 잉여농산물 처리를 위해 제정한 '농업교역 발전 및 원조법'으로 식량을 지원했다. 즉 '미공법 480호'(PL480호) 식량 원조다. 1969년까지 계속됐고 초등학교에 빵과 밀가루가 급식으로 제공됐다. 국제연합아동기금 도움으로 1953년 빵 무상급식으로 시작한 한국의 첫 학교급식은 이렇게 확대됐다(이는 미국 밀의 한국 식탁 점령 신호탄이었다. 미국 농산물 원조와 수입으로 국내 식량 생산 기반이 급격히 붕괴한 탓이다).
어쨌든 이런 바탕 위에 초교 중심으로 조금씩 싹을 틔운 학교급식 역사다. 학교급식은 60년이 지난 2015년, 상전벽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 2월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1만1천619개교 100%에 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일일 급식 학생 수도 632만 명으로 전체 학생의 99.8%다. 급식 예산도 2007년 4조1천973억원에서 지난해 5조6천13억원으로 늘었다. 또 정부와 지자체 지원, 무상급식 추진으로 학부모 부담은 2007년 71.7%에서 2014년 29.3%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가벼워질 전망이다.
이런 학교급식의 양적 팽창에는 그림자도 있다. 급식의 질과 관리 문제다. 매년 되풀이하는 식중독 사고 등이 그것이다. 급식 식재료 선택은 학교마다 다르다. 학교급식 학생은 일일 평균 632만 명이지만 안전하고 고품질의 친환경 식재료 결정은 학생 몫이 아니다. 서울시와 경기도, 경북도 등 광역 및 시'군의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과 설립 추진이 이뤄지는 까닭이다. 농민'시민사회단체 등이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식자재 사용을 주장하고 로컬푸드 운동을 끊임없이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녀 급식에 목소리를 내고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학부모와 예산을 주는 지자체가 소극적이다. 학생을 위한 식재료 구입의 식품비 부담은 정부와 지자체, 학부모 등이 맡는다. 지난해 경우 전체 급식 예산 5조6천13억원 중 식품비는 3조2천257억원으로 전체의 57%였다. 5조원 넘는 급식비 가운데 지자체 지원금과 학부모 부담금은 2조7천973억원(50%), 발전기금과 기타가 1천374억원(2.4%)으로 교육청의 2조6천666억원(47.6%) 보다 많다.
따라서 지자체와 학부모는 자녀 급식에 목소리를 낼 자격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지자체는 지원 뒤 과연 친환경 농산물이나 지자체 생산 농산물이 얼마나 쓰였는지 파악조차 않고 있다. 무신경에 다름 아니다. 일본과 대조적이다. 손재근 전 경북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정기적으로 전국 47곳 도도부현(都道府縣)의 학교급식에서 각 지역 농산물 활용 상황을 막대그래프로 파악했다. 이를 지자체와 관련 기관에 통보,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부터 시작해 2015년까지 학교급식에서 지역농산물 이용 비율 30% 목표를 세웠고 2011년 현재 25.7%로 나타났다.
즉 일본은 우리의 농산물 소비운동인 신토불이(身土不二) 같은 지산지소(地産地消) 활동을 학교급식에서부터 적용, 실천하는 셈이다. 일본 학교는 미래 세대인 학생에 신선한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급식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환경보호와 로컬푸드로 지역사회 활성화 기여 등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첨병이 되고 있다. 또 농업 기반 확보를 통한 식량 안보라는 국익(國益)도 챙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간 학교급식에서 지역 농산물의 식재료 공급 규모는 5천억엔으로 추정된다.
우리 국민은 건강식품과 음식에 관심이 많다. 요리 프로그램이 넘치는 까닭이다. 자식 목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는 듣기도 좋다고 했다. 미래를 짊어질 이 땅의 학생, 자녀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이는 결실의 계절, 가을을 위해 땀 흘려온 이 땅의 농민, 힘든 농업 그리고 국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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