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m 계곡 상류 마트마크 인공 호수
야생화 가득한 알파인 풀밭 거닐 때쯤
고개 정상엔 거대한 황금빛 마돈나상
큰 산과 강은 인간 삶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경계 짓고 갈라놓는다. 알프스 산맥의 주요 능선들은 자연히 국경선이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로 나눈 휴전선과는 달리 알프스의 국경 고개와 능선에는 철책이라곤 없고, 있다 하더라도 작은 돌로 만든 표식 정도만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오래전부터 알프스의 산골 사람들은 이념이나 정책의 구속이 아무리 강해도 현실의 삶을 위해 자연이 주는 어떤 험난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름철에도 눈이 남아 있는 3,000m 내외의 고개들을 가축을 몰고 생필품을 지고 넘어다녔다. 그 기원은 로마시대 이전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남북으로 가른 몬테 모로 고개(Monte Moro·2,868m)에 올라본다.
출발은 스위스의 마트마크(Mattmark·2,200m) 댐이다. 이곳에 가려면 스위스 론 계곡의 브리그(Brig)에서 열차나 버스로 스탈덴(Stalden)까지 이동하여 자스 그룬드(Saas Grund·1,559m)행 버스를 타면 된다. 여름 성수기에는 자스 그룬드에서 마트마크까지 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체르마트와 마터호른이 있는 마터탈 계곡 동쪽의 자스탈 계곡 상단에 마트마크가 있다. 알프스 산맥의 각 계곡 상류에는 이렇게 빙하 녹은 물을 가두어 전기를 생산하는 댐이 많다. 마트마크 또한 그러한데, 인공이라곤 하지만 2,000m 고지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으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댐 옆으로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 나 있다. 오전에는 좌측, 오후에는 우측으로 오르면 땡볕을 피해 주변 풍광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호수 끝자락에서 몬테 모로 고개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나무라곤 없고 민들레 등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알파인 풀밭 사이로 돌길이 잘 나 있다. 옛사람들이 국경 너머로 소떼를 몰고 간 이 돌길은 2,868m 높이의 고개 정상까지 아주 잘 놓여 있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30분 오르면 맑은 개울이 흐르는 아늑한 풀밭이 있어 캠핑도 가능하다. 여기서부터 고개까지 본격적인 오르막 돌길이 시작된다. 고개가 가까워질수록 반듯한 돌들이 잘 놓여 있는데, 어떤 구간은 2m 너비의 돌이 반들반들하게 닳은 데도 있다. 수많은 소떼를 몰고 이 길을 오르내리던 스위스 목동들의 삶의 무게를 보는 것 같다. 요즘이야 교통이 발달해 소를 몰고 이 고개를 넘을 일은 없겠지만 고개 아래 호수 위의 풀밭에는 여전히 많은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고개 아래 북사면인 스위스 쪽은 한여름에도 눈이 남아 있어 주의를 요한다. 뒤로 마트마크 호수와 그 아래로 자스탈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두 시간 만에 오른 몬테 모로 고개 정상에는 거대한 마돈나상이 황금빛에 빛나고 있다. 이제부터 이탈리아에 들어선 셈이다. 마돈나가 이탈리아 쪽으로 향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개 남쪽 계곡에 위치한 마쿠나가(Macugnaga·1,317m) 사람들이 세운 게 분명하다. 마쿠나가에서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면 고개에서 멀지 않은 전망대에 오를 수 있기에 마돈나가 있는 고개 정상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다. 고갯마루에선 이제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무엇보다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알프스 제2위봉 몬테 로자(Monte Rosa·4,634m)의 위용이 일품이다.
고개에서 발길을 돌려 스위스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스위스와는 또 다른 이국의 매력을 맛보기 위해 이탈리아의 마쿠나가로 내려간다. 케이블카 역 가까이에 오베르토 산장이 있다. 여기서 하룻밤 묵으면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요데르호른(3,035m)에도 올라볼 만하다. '장미의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알프스 2위봉 몬테 로자의 3,000m 동벽에 아침 햇살이 붉게 물드는 웅장한 광경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마쿠나가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내려갈 수도 있으며 제법 가파르지만 오솔길이 잘 나 있다. 두 시간이면 충분히 하산할 수 있다. 고개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도 이태리 북부의 안자스카 계곡 상류에 위치한 마쿠나가는 스위스의 여느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교회의 규모만으로도 이 마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꽤 크다. 예전에는 금광으로 번창한 마을이지만 이제는 활기를 잃어 교회뿐 아니라 많은 건축물이 낡았다. 여름철에 알프스의 시원함을 찾는 피서객들이나 찾아오는 마을이지만 알프스를 유유자적하게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멋진 휴식처가 될 것이다. 시내 로터리 주변에 식당 및 식료품점과 숙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으며 물가 또한 저렴한 편이다.
◆Tip: 몽블랑이 있는 샤모니나 융프라우가 있는 그린델발트 쪽에 비해 교통이 다소 불편한 몬테 모로 고개에 오를 경우, 며칠 더 시간을 할애하여 주변을 함께 둘러보는 계획을 세우면 좋다. 스위스 쪽에서 출발한다면 우선 체르마트나 자스페 같은 유명 산악 마을과 몇몇 전망대, 산책로 등을 둘러보고 몬테 모로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에 들어서면 좋을 것이다. 마쿠나가에서 곧장 알프스를 벗어나기보다는 고개 하나를 더 넘어 일정을 연장할 수도 있다. 툴로 고개(Colle del Turlo·2,738m)는 알프스 산골의 주요 통상로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 세계대전에서 군사 목적으로 옛 산길을 확장 정비해 몬테 모로 고개보다 더 넓고 반듯한 돌길이 나 있다. 알프스에서 이보다 나은 돌길은 없을 정도다. 툴로 고개 아래의 알라나(Alagna·1,180m)는 밀라노 쪽으로 흐르는 발세시아 계곡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아담하고 매력적인 산골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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