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숫자로 평가하는 세상

1971년생. 경북대 행정학과. 영국 셰필드대. 도시계획학 박사. 제2회 지방고등고시.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 기획팀장. 한국정부학회 편집이사
1971년생. 경북대 행정학과. 영국 셰필드대. 도시계획학 박사. 제2회 지방고등고시.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 기획팀장. 한국정부학회 편집이사

행정·재정·교육의 평가 잣대는 수량

'계량적 수치=합리적' 믿음에서 비롯

지나친 숫자놀음, 질적인 면 약화시켜

양적 결과에 집착 않는 노력 기울여야

숫자는 중요하다. 경제활동, 학교생활 등 인간 삶의 다양한 현상은 수치화되면서 더 구체적인 정보로 발전한다. 또한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전달할 때에도 숫자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세상은 숫자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인간은 숫자를 통해 현실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숫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행위의 변화를 유도한다.

지역경제에서도 숫자는 지역경제주체들의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역기업의 상황, 지역민의 소득 수준 등 지역경제의 실태는 대부분 숫자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런 숫자를 통해 지역경제의 건전성과 발전 정도를 비교'평가한다. 대구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시'도 중 최하위이기 때문에 지역 내외에서는 대구경제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다양한 대책을 주문하게 되고, 지방정부는 이에 대해 대응하게 된다. 지방행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있지만, 재정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국가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별로 국비 예산의 양이 중요한 실적이 된다. 지자체의 국비 예산 규모는 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의 노력과 성과, 나아가 지역의 정치'행정적 역량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대학에서도 숫자는 평가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대학교수의 평가는 주로 교육, 연구, 봉사 등의 영역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학자로서의 역량과 관련된 연구는 논문을 통해 평가한다. 논문에 대한 평가는 양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논문의 발표 수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숫자가 합리적'과학적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활동을 충분히 계량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강하게 뿌리내리면서 숫자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숫자는 인간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으면서 인간의 행위를 보다 개선하는 도구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숫자는 항상 진실을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계량적인 분석 결과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도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 로렌조 피로라몬티(Lorenzo Fioramonti)는 '숫자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숫자가 항상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님을 강조하며,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숫자의 힘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숫자가 지나치게 앞에 나서게 되면, 이성적 토론이 약해지고, 다양한 가치들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면, 지역총생산의 절대적인 수치가 낮아 이의 해결책을 주로 양적 규모가 큰 대기업의 유치나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등에서 찾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기존 지역 중소기업들이나 창업 등에 대한 관심이나 자원배분은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국가 예산 확보의 규모가 중요하다 보니 공무원들은 신규사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그에 따라 기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예산배정은 오히려 부족한 문제가 생긴다. 이는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 오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숫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숫자를 통해 인간은 좀 더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숫자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계량적인 분석과 양적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서 숫자는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는 괴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의 몸과 마음이 숫자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움직이는 데 익숙해 있다면, 숫자로서는 개선되더라도 본질적인 변화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양적인 사고와 질적인 사고가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지 않고, 숫자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강해지면 우리 사회는 더욱 경쟁적으로 변할 것이며, 우리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그게 아니라면 숫자에 지배받는 사회가 아닌 숫자를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려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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