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하느님 곁으로 가신 아버지는 평생을 부도(不渡)와 싸워야 했다. 서문시장에서 원단 유통업으로 돈을 벌고 제직공장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툭하면 돌아오는 부도어음과 수표 탓에 아버지 당신은 물론, 가족 모두는 거친 파도 한가운데 떠있는 돛단배처럼 흔들거렸다.
부도를 몇 번 맞았는지는 기자가 어려 잘 모르겠지만 부도났다라는 말은 기자의 어린 시절을 뒤흔든 단어 중 하나였다. 큰 부도를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누나'형과 함께 가끔 놀러 갔던 공장은 남의 것이 됐고 기사 아저씨도, 자동차도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마음껏 누릴 수 없다는 고통도 힘들지만 부도는 가정의 평화를 깨트렸다는 점에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집에 돈이 사라지면 부부 싸움이 났고, 어린 3남매는 불안에 휩싸였다.
기자가 봐도 아버지의 사업이 너무 많이 기울었다고 생각되던 때엔, 받을 돈을 제때 못 받고 3개월, 6개월짜리 어음'가계수표를 아버지가 많이 들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 어음'수표는 교환이 안 된 채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말년엔 법률적 지식을 좀 쌓은 듯, 소액심판을 통해 자금 회수에 나서곤 했다.
부도에 대한 공포는 어머니로 하여금 사업을 해선 절대 안 되고, 모두 봉급생활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갖게 하셨고, 기자를 비롯한 3남매는 모두 비슷한 길을 갔다.
기억하기 싫은 어린 시절 부도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22일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도청 이전을 연기하겠다"는 언론 브리핑을 보고 나서다.
김 도지사가 꺼내놨던 도청 이전 관련 발언, 그리고 이 말을 받은 뒤 써냈던 기사를 찾아봤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올해(2014년)는 경상도 개도 70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라며 "올해(2014년) 연말엔 도청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도청 신청사만 있지, 도청 공무원들이 살 집이 없다"는 질문에 대해선 "직원들의 거처 마련에 대해 걱정이 있지만 이런 요인들이 도청 이전 개시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연말엔 "내년(2015년) 하반기", 지난 2월에도 "(2015년) 9월 도지사 집무실 이전" 발언이 나왔다. 김 도지사는 7월 1일엔 공식 발표도 했다. 10월에 시작해서 11월엔 이사를 끝내겠다고.
사실 지난해부터 도청 이전 시기와 관련, "김 도지사가 결국 부도를 내고 말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경북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윤성규 위원장을 비롯해 도의원들은 지난해 여름 김 도지사의 잇따른 이전 시기 약속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건설소방위 남천희 도의원(영양)은 "기반조성 사업 공정률이 57%인데 비해 도청 건축 공정률은 76%다. 기반조성사업 공정과 건축 공정이 균형을 이루면서 도청 이전이 추진되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2015년) 가을 이전은 애당초 안 되는 것이며 이전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건설소방위 다른 도의원들도 "모든 상황을 볼 때 김 도지사의 발언이 부도로 돌아올 것"이란 한목소리를 냈다. 결국 부도는 나고 말았다. 김 도지사는 22일 도청에서 도청 이전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에 걸쳐 '발행해온 수표'를 공식적인 '공수표'로 만든 것이다.
김 도지사는 기자를 만날 때마다 "시장과 도지사를 거치는 동안 지도자는 시'도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신조로 삼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도청 이전과 관련된 그의 목소리에는 믿음과 신뢰가 실리지 못했다. 불과 두 달 전 목소리와 이달의 목소리가 달랐다. 그가 목소리를 달리한 이유로 내세운 것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그도 알고, 도의원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모두가 예측했던 내용이었다.
'그분 목소리'가 자꾸만 떨린다면, 변화가 심하다면, 사람들은 라디오를 꺼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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