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아름다운 것은 사람뿐이다. 화사한 목련도 봄 한 철일 뿐만 아니라 질 때는 시커멓게 너불너불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하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시간이 지나 시들면 아름다움 보다는 쓰레기로 치부되기가 쉽다. 나무도 늙어 고목이 되어 쓰러질 때는 몰골이 흉측해 보인다. 쇠도 오래되면 녹이 슬고 웅장한 건물들도 오래되면 삭아 기울고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늙을수록 여유롭고 품위 있으며 고상하고 멋이 있다. 겉모습이야 세상 풍파를 지나온 인생 골이 깊게 파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팔다리는 가늘겠지만 가슴은 세상을 달관하여,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빨리 늙고 싶은지도 모른다.
젊은 날, 자주 주먹에 불끈불끈 들어가던 힘을 빼고 싶다. 남이 하는 충고 한마디가 거슬려 밤새도록 되뇌어 보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자학하던 피 끓는 그 시대를 벗어나고 싶은 거다. 혹자는 가장 부러운 것이 '청춘'이라 했지만 만약 내게 선택권을 준다면 부글부글 끓는 청춘보다는 이래도 저래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한 푸근한 '늙음'을 택하겠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것에도 애가 마르지 않다. 이기고 짐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람한테서 받는 상처도 훨씬 덜하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의 확고한 의지가 분명하다. 지면서도 이기고 이기고도 스스로 지기도 한다. 기쁨에 들뜨지 않고 슬픔에 아파하지 않으면서 생을 마무리하며 초연해지는 그런 시간을 사는 늙은이가 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어찌 그리 작은 바늘 하나의 아픔에도 견디기 어려웠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은 흔들거리며 도지는 병치레를 해야만 했는지, 정말이지 이제는 빨리 늙고 싶다. 풋풋하고 싱그럽던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세월 가니 저절로 물렁해지더이다. 늙어가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늙어서는 안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사람처럼 우아하고 점잖은,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사람으로 늙어가야 한다. 타인에게 모범이 되고 남의 존중을 받기란 쉽지 않다. 늙어가면서 스스로 익히면서 다듬어야 한다.
나는 제대로 늙고 싶다. '늙음'은 단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돼 간다는 것이기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세상을 용서하고 안아주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앞서 가면서 제대로 선을 그어 주어 뒤에 오는 이들이 바르게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살면서 앞선 이들의 바른 발자국을 밟으며 가는 길이 새 길을 내며 가는 것보다 힘들다. 늙어 가는 것도 젊은 날 쌓아놓은 바탕 위에서 가기 때문에 실은 젊은 날 하루가 '늙음'으로 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늙음'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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