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리와 울림] 젊음의 우상화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청년과 노년이 명확했던 인생의 절기

오늘날 모든 이가 젊음 유지하려 애써

어린이·노인 설자리 없어 단절만 부추겨

추석 명절 '세대'의 의미 곱씹어 볼 때

"한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이 되며 저녁에는 다리가 세 개로 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가위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이런 수수께끼로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스핑크스가 숨어서 여행자를 기다리다가 이 수수께끼를 내어 답을 맞히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오이디푸스가 당연히 맞힌 이 수수께끼의 답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인간'이다.

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사람의 일생을 하루에 비유한다. 아침의 네 다리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아기 때를 가리키며, 두 개의 다리란 청년 때를 뜻하고, 세 개의 다리는 지팡이를 짚은 노년기를 가리킨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개의 특별한 시기로 구분된다. 어린 시절을 지나고 나면 청소년기를 겪고, 청년기에 사회에 나가 활동을 하다 중년기를 맞고, 그리고 활동기가 끝나면 인생을 정리할 노년기가 찾아온다. 이 모든 삶의 단계들은 '젊음'과 '늙음'의 구별을 전제한다. 10대는 20대보다 젊고, 중년은 노인들보다 젊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몸은 늙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수께끼의 답처럼 명확하였던 인생의 절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젊음은 점점 더 우상화되고, 늙음과 나이 듦은 가능한 한 극복해야 할 일종의 '악'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를 한 번 상상해보라. 어른이라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덕담을 건네면, 젊은이들은 과연 경청할까?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려는 전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젊다는 것은 여전히 최고의 자산이다. 모두 젊어지려고 애를 쓴다. 어린아이들은 될수록 빨리 청년이 되려고 애를 태우고, 나이 든 노인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은 여유롭게 덕담을 건네는 대신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려고 한다. 젊은이들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입고,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모르면 비즈니스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다.

"어떻게 하면 젊게 보일 수 있을까?" 이것이 온갖 의료기술을 통해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는 21세기 최대 관심사다. 세대의 경계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 오늘날 외모를 보고 나이를 추정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나이로 외모를 추정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오늘날 우리를 훨씬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라고 모두 지팡이를 짚지 않으며, 젊은이들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여전히 네 다리로 운동하기 때문이다. 나이 팔십이 훌쩍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이의 몸매와 체력을 뽐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젊음이 우상화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얼마이든 간에 외모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서 항상 '젊게' 살려고 한다.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순진성과 천진난만함이 설 자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아이와 노인이 점차 퇴색하여 젊은 시절을 장식하는 양 날개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세대'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아침과 낮과 저녁의 구별이 없어지고 계절의 변화가 무의미해져서 온통 한여름의 대낮만 계속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젊음의 우상화는 역설적으로 모든 세대를 젊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세대의 단절을 강화한다. 요즘은 다섯 살 차이로도 세대의 간극을 느낀다고 한다. 다양한 세대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인생의 연속적인 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 세대가 함께 만나는 추석 명절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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