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가위는 그저 1년 중 하나의 저녁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저녁' 이상의 의미가 담긴 날이다. 결실의 풍요, 가정의 화목, 조상에 대한 감사와 흥겨운 놀이가 한 저녁 안에 모두 있었다.
서울 구로공단에서 새벽 열차로 내려온 동네 형들의 손엔 설탕, 정종병이 들리고, '빤타롱 바지'로 한껏 멋을 낸 누나의 손엔 내의, 종합선물세트가 쥐여 있었다.
딱총 연기 자욱한 골목은 막 추석빔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의 병정놀이로 부산하고, 손자를 업은 할머니 얼굴엔 세상을 업은 듯 행복한 웃음이 배어났다.
마을 뒷동산으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하나둘씩 모인 마을 계집애들은 둥근 대형을 지어 강강술래를 돌았다.
손자의 재롱에 할머니는 바삐 과방(果房)을 드나들고 조카의 춤 자랑에 삼촌은 지갑을 열었다. 지금이야 아이패드를 보면서 차례상을 차리고, 마트에서 사온 송편을 올리지만 그래도 명절의 기분은 세대를 넘어 공유된다. 입시에 학원에 지쳐 있는 아이들의 고단한 하루를 안아주는 넉넉한 계절이 있기에 우리에게 추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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