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문화 7개 주제로 분석, 대안 민주주의 찾기…『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김정인 지음/책과 함께 펴냄.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영향력도 막강하다. 정치는 물론이고 일상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차지했던 이데올로기적 위상에 맞먹는다.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이며 절대적 가치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고 변화했는지를 따져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군정기 미국이 이식한 '제도'에 불과한 것일까.

이 책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는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까지의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는다. 19세기 한국사를 민주주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 시기의 민주주의에 대해 역사학계는 주로 농민항쟁으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에 주목한 반면, 사회학계는 개화운동으로 상징되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학계가 반봉건, 즉 전근대에서 탈피해 근대로 전환하는 것에 주목했다면, 사회과학계는 민주주의를 화두로 삼아 현대의 기원으로서 근대를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과거 전제군주의 나라였던 조선에 민주주의라는 용어나 제도가 없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없었다거나 민주주의를 몰랐다고 규정한다면 곤란하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삶을 엮어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회를 운영했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문화적 관점에서 7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다. 민주주의는 제도이자 거대한 문명, 문화이기 때문이다. 1장의 주제는 인민이다. 여기서는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평등한 인민의 탄생과정을 살펴본다. 소외와 배제의 대상이었던 노비와 여성이 추구한 해방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2장의 주제는 자치다. 우리나라 자치의 원리가 천주교와 동학이라는 평등 지향적 종교 공동체 속에서 싹트는 과정과 종교적 자치 경험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최제우가 창건한 천도교는 1910년경 100만 명의 신도를 거느렸고, 독립운동과 천도교 민주화 등을 실현하려는 현실 참여적 대안 공동체였다.

3장의 주제는 정의다. 인민이 국가를 향해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요구하며 봉기한 농민항쟁과 농민전쟁을 통해 인민이 요구한 개혁의 내용을 살펴본다. '신민'(臣民)의 한계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이 탄생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안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맹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4장의 주제는 문명이다. 문명화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됐던 개화파가 권력에서 배태되고 신문과 학교라는 서양문물을 통해 인민이 민주주의적 문화를 익히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은 인민의 문명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문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 태도, 관계, 제도 등을 계몽해 시민성을 향상시켰다.

5장의 주제는 도시다. 서울의 도시화 현상을 배경으로 자발적으로 탄생한 결사체와 이들이 펼친 시위와 집회가 전개되는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도시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도시는 민주주의의 사회공간적 배경인 동시에 밖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들여온 개화파와 안으로부터 민주주의 문화를 빚어낸 인민이 결합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형성된 자발적인 결사체는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전국적 대중운동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6장의 주제는 권리다. 타고날 때부터 정해지는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자율적 개인의 탄생과 인간권리로서 인권과 인민의 권리로서 민권이 어떻게 의식화 과정을 거쳐 자리 잡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7장의 주제는 독립이다. 나라의 자주적 독립의 방안으로 제기됐던 입헌군주제 담론과 3'1운동을 거치면서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지은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 혹은 찬양 대신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오늘의 현실을 딛고 일어설 대안의 민주주의가 절박한 시점이다'며 과거의 민주주의 발달과정을 살펴 더 나은 민주주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407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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