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휴일이 다가오면 기대하기 마련이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이들은 업무에서, 아직 배움에 있는 이들은 학업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해방감 때문이다. 그래서 휴일이 연이은 연휴가 되면 쾌재를 부르고,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명절 연휴도 마찬가지. 길면 길수록 좋고, 짧으면 몇 년 후 달력을 뒤적이게 된다. 그래서 1971년 10월 3일 자 매일신문 1면 '매일희평'을 보면 한없이 공감한다. 그해는 추석'개천절'일요일이 겹쳤다. 그런데 궁금한 게 생긴다. 그 시절에는 추석연휴를 어떻게 보냈을까? 세상만사가 그렇듯 놀고 싶은 마음이야 변치 않았다. 노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 옛 신문에서 그 시절 추억을 찾아보자.
◆폭음탄, 권총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때는 폭음탄 터뜨리고, 권총으로 총싸움하며 놀았지."
김정환(52) 씨는 어린 시절 명절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사준 권총과 폭음탄부터 떠오른다. 어린 시절 그와 동무들은 명절이면 권총 한 자루씩 장만했다. 명절 오후가 되면 어린 김 씨는 마치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새로 산 권총을 허리춤에 꽂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골목길을 활보했다. 그리고 형제, 종형제, 동네 동무 등과 패를 나눠 골목에서 비장미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이 추억은 김 씨만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게다가 김 씨보다 더 장난기 많은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추석 다음 날인 10월 1일 자 매일신문 6면에는 '아동 폭음탄 위험'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추석을 전후하여 안동시내는 골목마다 어린이들이 폭음탄을 마구 터뜨리고 있어 단속이 아쉽다'는 게 기사 첫 문장이다. 다음 문장에서는 '이 폭음탄은 시내 구멍가게에서 상표도 없이 1개 5원씩 팔고 있는데 어린이들은 골목에 숨어 있다가 부녀자들만 지나가면 폭음탄을 마구 터뜨려 놀라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 추석 당일인 1975년 9월 20일 자 7면에도 '장난감 폭음탄 단속'이란 보도가 등장한다. 당시 언론과 경찰은 폭음탄, 불꽃탄, 딱총 등이 무허가로 제조되어 화재 위험이 있어 '위험 장난감'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기사에는 "딱총, 화약 등을 제조한 업소는 이를 총포화약물단속법위반혐의로 형사입건토록 하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그 시절 김 씨와 동무들의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법을 위반했던 모양이다.
반면에 요즘 어린이들은 명절이면 골목에서 놀지 않는다. PC방도 이젠 옛말이다. 방 한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갖가지 게임을 즐긴다.
◆근교 나들이에서 외국 여행으로
정모(29) 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밤 무도회장에서 밤새 젊음을 즐겼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홀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정 씨 부모는 딸의 여행 계획에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결국 그 뜻을 굽히는 데 실패했다. 부모를 설득하는 난관을 헤치고 다녀온 제주도 여행. 정 씨는 즐거웠을까?
정 씨는 "어릴 때는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고 여행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너무 바빠 여름휴가도 가지 못해 '추석 연휴만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말을 꺼냈다. 처음으로 홀로 떠나본 여행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번 추석과 내년 설은 큰집에 가고 내년 추석에는 외국으로 나가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2천만 명 이상이 움직이는 민족 대이동의 연휴기간이 젊은 사람들에겐 해외여행의 기회로 자리 잡은 지도 이미 오래다. 한 세대 전 한가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에도 휴일을 달콤하게 즐겼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차례를 지낸 후였다는 정도다. 1975년 9월 20일 자 매일신문 4면을 들여다보자. '추석 낀 황금연휴 1박 2일 캠핑도'라는 기사가 보인다. 그해 추석 연휴는 금요일~일요일까지 2박 3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사에는 "대부분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성묘길에 오르지만, 현재 거주하는 곳이 고향인 사람 중 등산광들은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 후 1박 2일의 등산 일정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인기있던 가족 나들이 장소는 팔공산이나 칠곡군 가산 정도였다. 그리고 기사에서는 귀경객들로 교통 불편이 우려되니 무리하게 장거리 일정을 잡기보다는 대구 근교를 목적지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영화는 여전히 추석 단골
매년 추석 연휴 대구 동성로 극장가에는 손에 손잡고 영화 보러온 가족,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경용(31) 씨 역시 추석 연휴마다 극장을 찾는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절이면 당숙과 종고모의 손에 이끌려 대구 시내 극장을 다녔다. 그래서 김 씨가 추석 때 극장을 다닌 게 벌써 햇수로 20년이 넘는다.
김 씨는 "영화 라인업을 보면 추석 시즌을 노리고 나오는 영화가 꼭 있다. 매년 추석이면 연휴 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몇 편씩 생겨 극장으로 향하게 된다"며 "아마 당숙이나 고모도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는 추석 놀거리의 단골이다. 1970년대 추석 즈음 신문 지면에는 '秋夕特選푸로'(추석특선프로)라거나 '이번 추석은 내가 뫼시겠오!'라는 문구로 독자를 유혹하는 극장 광고가 자주 보인다. 또한 1973년 9월 11일 자 본지 5면에는 '추석흥행 기대하는 극장가'라는 제목으로 대구극장, 아시아극장, 한일극장 등 각 극장 상영작을 소개하는 기사가 게재됐다.
이와 같은 기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25일 자 본지 24면에도 추석 극장가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 역시 '이번 추석 시즌에 새롭게 선보일 영화의 면면을 보면 지금까지 형성된 흥행 기류에 어떤 파열음을 낼 것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한다'며 40여 년 전 기사와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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