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추석 준비 때 아무 유별난 게 없다. 나는 우리 집 두 꼬마에게 때때옷을 장만하는 것으로 추석 준비를 마쳤다. 하필 꼭 추석에 장만할 이유는 없지만 어릴 적 명절이면 엄마가 내주던 새 옷이 그렇게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1977년 9월 25일 자 매일신문 5면에 실린 독자 전정자 씨의 글이다. 과거에는 명절이 돼야 때때옷이나 새 옷 한 벌 입어볼 수 있어 어린이들은 차례용품 장만하는 어머니의 고난도 모른 채 그저 명절만 손꼽아 기다렸다. 또한 성인들은 추석 상차림으로 팍팍하지만, 서로 정을 내며 주고받는 선물이 있어 한가위가 풍성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시간을 달려 그 시절 추석 빔과 선물에 얽힌 기억을 더듬어보자.
◆추석 빔과 때때옷
예전에는 어머니가 옷을 사주는 건 일 년에 딱 두 번이었다. 설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건너뛸 때도 있었지만, 추석엔 늘 새 옷을 사주셨다. 간혹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새 옷은 새 옷대로 장만하고, 추석날에는 때때옷을 입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그게 추석 빔이라고 했다. 그래서 추석 빔이라고 하면 그때 입어보지 못한 때때옷부터 떠오른다. 추석 빔과 때때옷의 유래는 무엇일까?
기제사와 달리 설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에는 가족 전체가 제관이 되기 때문에 헌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한다. 추석은 햇 작물을 먹는 수확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새로운 시작에는 새로운 의관이 필요하다. 또한 무더웠던 여름을 접고 겨울을 준비해 가는 시점에서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포근한 옷 한 벌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이게 추석 빔이다. 어른들의 옷이야 예복으로서 격식만 갖추면 되니까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어린이는 평일에 입히지 않는 색동옷을 입힌다. 일곱이란 숫자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이게 때때옷이다.
◆때때옷 대신 가을'겨울 옷으로
어느새 추석에 한복을 입은 이들을 보기 어려워졌다. 한복 입은 이라 해야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기들이 전부다. 한복은 물론이고 점차 '때때옷'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산업화를 거치며 실용성을 강조하며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매일신문 1972년 9월 19일 자 5면에는 '주부메모'라는 코너가 나온다. 그 내용 중에 '꼬마 추석 옷 장만'이란 부분이 있다. 기사를 읽어보면 "추석 명절에 입는 꼬마들의 때때옷은 추석 하루가 지나면 별로 입을 기회가 없는 옷이라 때때옷을 새로 마련할 비용이 있으면 꼬마를 달래서 될수록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도록 한다"는 문장이 있다.
1975년 9월 19일 자 기사는 실용성이 극대화된 모습을 보인다. 추석 경기를 다룬 기사에서 추석 빔 관련 상가와 시장의 분위기를 전하며 차례용품이나 아동복을 판매하는 상점에만 인파가 붐빌 뿐 다른 곳에선 추석 경기를 찾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네 살배기와 100일이 갓 지난 두 아들을 둔 이희승(30) 씨는 "올해 처음으로 첫 아이 추석 빔으로 가을 옷을 한 벌 사줬다. 어차피 날이 추워지니까 겸사겸사 사 준 셈이다"며 "얼마 전에 친구가 SNS에 아들 추석 빔으로 사준 신발 사진을 올린 걸 보면 추석 빔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역시 4살 난 아들을 둔 박규진(36) 씨는 "딱히 추석 빔을 사진 않는다. 요즘은 평소에도 옷을 사 입히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옷을 철마다 사주기도 해서다"며 "한복도 첫돌 때 마트에서 5만원 안팎의 제품을 두세 치수 크게 사서 두고두고 입히기 때문에 따로 빔을 준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선물 품목 인기도 오르락내리락
추석은 농작물의 수확이 이뤄지는 시기라 과일, 곡식 등이 풍부하다. 이를 사람들과 나누어 먹던 것이 오늘날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소금이 금보다 귀했던 시대가 있었듯,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선물의 종류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어떤 추석 선물이 인기를 끌었을까?
추석에 주고받는 선물에는 당시의 경제상황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쟁을 겪었던 1950년대에는 사고파는 물건의 종류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겠지만 사람들은 추석에 주로 식료품을 주고받았다. 고기류와 계란, 쌀, 밀가루와 같은 음식 재료는 먹을 것이 귀한 시기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1960년대는 설탕, 비누, 조미료, 통조림, 라면과 같이 어느 집에서나 필요한 생필품 및 가공식품이 인기 품목이었다. 특히 '색이 하얀 세 가지'라는 삼백(三白)식품(설탕, 조미료, 밀가루)의 인기가 높았다.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에는 생활에 비교적 여유가 생기면서 치약, 식용유, 와이셔츠, 화장품, 내의 세트뿐만 아니라 과자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기호식품이 새로운 인기 선물로 등장했다. 이 무렵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타킹, 속옷, 양산 등이 추석 선물 목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라디오와 카세트, 믹서기 등은 특히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선물이었다.
실제로 본지 1972년 9월 21일 자 2면 보도에 따르면 서문시장의 한 상인은 "과자류는 경기를 타지 않는다"며 "시골로 나가는 것은 '비스킷' 류가 많고 대구 시내에 팔리는 것은 종합선물세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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