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가족 없이 홀로 생활하는 뇌경색 정은경 씨

원인 모를 가슴 통증 "건강 회복해야 일할텐데…"

뇌경색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정은경 씨는 갈수록 불어나는 빚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뇌경색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정은경 씨는 갈수록 불어나는 빚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정은경(가명'59) 씨는 20년 넘게 가족 없이 홀로 지내고 있다. 남편과는 오래전 이혼했고 아들 둘은 어려운 형편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몇 년 전부터 원인 모를 가슴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은경 씨는 대부분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 조금만 길을 걸어도 갑자기 숨이 막히고,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에 병원에 실려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수천만원의 빚에 월세도 못 내 보증금으로 겨우 버티는 은경 씨는 일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할 수 없다. "건강을 회복해 무엇이든 나가서 일만 할 수 있으면 제 한 몸 부지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날이 갈수록 쌓이는 빚과 집세 걱정에 요즘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싫어요."

◆힘들었던 결혼 생활

은경 씨는 경북 안동의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중'고등학교는 꿈도 못 꿨다. 은경 씨는 어린 시절부터 빨리 결혼해 집에 한 입이라도 더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동네 어른들의 중매로 19세 앳된 나이에 광부였던 열 살 많은 남편에게 시집갔다.

은경 씨는 남편을 내조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에 부풀었지만 그 꿈은 금세 산산조각났다. 의처증이 심했던 남편은 결혼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은경 씨를 괴롭혔다. 남편은 평소에는 자상했지만 술만 마시면 괴물로 변했다. 남편은 바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술을 마시고 아내와 두 아들을 때리는 것으로 풀었다. 명절, 친정 대소사에도 친정에 가는 건 꿈도 못 꿨다. 결혼 생활 당시 은경 씨는 남편에게 심한 구타, 욕설에 시달렸지만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남편은 늘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 저와 아들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 벽에 마구잡이로 내동댕이쳤어요. 하루라도 집 안에 큰 소리가 안 나면 이상했을 정도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시집가면 여자가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참다 못한 은경 씨는 10년 별거 기간을 거쳐 결혼 20년 만에 남편과 헤어졌다. 위자료, 양육비는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 채 두 아들은 은경 씨가 데리고 왔다. 하지만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여자가 홀로 가정을 꾸려가는 건 만만치 않았다. 식당 주방일, 공장 청소일 등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두 아들은 성인이 되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 조선소, 건설 현장 등을 전전하는 두 아들과는 몇 년에 한두 번 전화로 안부만 묻는 정도예요. 형편이 어렵다는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아프니 도와달라는 부탁은 도저히 할 수 없었어요."

◆투병 그리고 불어나는 빚

남편과 아들 없이 홀로 된 은경 씨는 그때부터 더욱 일에 매달렸다. 아들이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결혼 비용이라도 보태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은 연이어 일어났다. 3년 전 청소일을 하다 일터에서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 길로 1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당시 수술비, 치료비 등을 마련하느라 생긴 빚 수천만원은 지금까지 은경 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수술 뒤에는 손, 발에 마비가 와 청소, 식당일마저 할 수 없게 됐다.

은경 씨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친척, 친구 등에게 조금씩 신세를 지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손 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일 년에 얼굴 한 번 보기 어렵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차상위 등 법적인 도움을 받을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은경 씨는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고 호흡 곤란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졌다. 병원에서는 결혼 생활을 하며 남편에게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가 지금까지 은경 씨의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보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져요. '희망'이란 말을 떠올리고 살았던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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