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누구를 위해 법은 존재하는가

누구나 법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범인은 법의 울타리 밖에 숨어 버렸다.

1999년 5월 20일, 대구 효목동의 한 골목길에서 김태완(당시 6세) 군이 괴한이 뿌린 고농도 황산에 중화상을 입고 고통 속에서 살다가 49일 만인 7월 8일에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 생전에 김 군은 죽어가며 ○○아저씨를 지목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범인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김 군의 부모는 지난해 7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올해 2월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으나 모두 기각됨에 따라 지난 7월 3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이로 인해 범인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지난 7월 31일 정부는 국회가 의결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는 개정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정작 태완이법에는 태완이가 없다. 즉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은 공소시효의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

공소시효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로는 첫째,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인권을 마구 짓밟는 반인륜 범죄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원하는 것이 국민 다수의 법감정이다. 둘째, DNA 검사 등 과학적 수사기법의 발달, 수사 전문화 등으로 범인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셋째, 이미 헌정질서 파괴 범죄 등 특정 유형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있다. 넷째,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고귀한 것은 없으며 인권 또한 매우 소중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해자의 고통이 피해자의 고통보다 클 수는 없으며, 단지 오랜 시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하지 않고 범인을 잡지 않는다면 피해자와 그 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이 수사기관의 캐비닛 안에 있다. 그중에는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과 더불어 화성 연쇄 살인사건,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등 대표적인 3대 영구 미제 사건이 있다.

김태완 군을 비롯한 피해자의 비극적 희생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가해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으나 그 이면에는 우리의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 문제가 있다. 즉 어린이, 부녀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실정이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모든 반인륜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한 가정을 파괴하고도 세월을 비켜서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관념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범죄를 예방하고 법질서를 확립하는 길이며,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법이 있어도 범인을 잡을 수 없다면 이는 국가가 그 책무를 태만히 하는 것이며 또한 국가 스스로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이 가해자를 위한 법인지 아니면 피해자를 위한 법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제2, 제3의 태완 군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존속살인, 상해치사, 폭행치사, 유기치사, 강간치사 등을 제외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에서 범죄를 영원히 추방하고,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모든 반인륜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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