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수필] 자장면 배달아저씨와 철학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라.

그 아저씨를 처음 만난 건 용인에 있는 큰댁에 다녀온 날이었다. 이미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터라 아이들도 나도 좁은 엘리베이터 안, 아저씨의 철가방에서 스며 나오는 맛난 자장면 냄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철가방을 든 아저씨와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시장하다는 걸 눈치 챘을까, 잠시 후 "조금 많이 가져왔습니다" 하며 내놓는 접시에는 잘 튀겨진 탕수육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정직하라.

아마 토요일 오후는 자장면집이 가장 분주한 시간일 거다. 그 아저씨의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토요일이면 배달시간이 조금 늦어진다. 하지만 그는 정직하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지금 배달이 밀려서 40분 정도 걸리는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하고. 흔히 '다 됐습니다' '곧 갑니다' 하는 식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아저씨의 정직함은 오히려 신뢰로 이어져 40분을 기다리는 수고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오차가 있게 마련이다. 때로 약속시간보다 늦어질 때면, 아저씨의 철가방에는 금방 익혀낸 물만두 한 접시가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너무 늦었지요. 죄송해서요" 하며 꺼내놓는 물만두는 묘한 감동까지 느끼게 한다. 가끔 자장면값에서 100원, 200원을 제해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저씨를 보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족

그 아저씨는 장애우다. 불편한 다리로 배달을 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인사한다. 부인은 주방일을, 자신은 배달을 맡다 보면 바쁜 날은 어린 딸아이가 전화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딸아이 또한 영리해서 주문은 빈틈없이 전달된다. 지난번, 물만두가 아주 맛있다고 했더니 "한가한 날, 서비스를 해드리지요"라고 이야기했다. 오늘은 어떤지 자장면 배달 아저씨께 전화를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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