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2] 음주범죄는 행복한 시간의 파괴자

장두기(경감·대구성서경찰서 생활안전계장)
장두기(경감·대구성서경찰서 생활안전계장)

나의 아버지는 합기도 체육관을 운영하셨고 아주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무도인으로서 엄격하시고 원칙을 지키셨지 터무니없이 엄격하지는 않으셨다. 또한 자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시곤 하였으나 술에 취하여 나와 동생들이 귀여워서 뽀뽀 정도 하시곤 주무셨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술에 취한 모습이 약간은 무서웠으나 아버지는 술 주정이나 소위 말하는 '주사'가 없어서 정서적으로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동생들과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아버지가 약간 취해서 오시면 일시적으로 행복한 시간이 멈춰지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경찰생활 동안 주취자들을 상대하면서 술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이 가정의 행복한 시간을 파괴하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봤다.

2005년 12월 서부경찰서 이현파출소에 근무하던 시절 긴급한 신고 하나를 접수했다. 신천대로 서대구 IC에서 성서 방향 새방골로 빠지는 부분 삼각형 안전지대에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시간이 자정쯤으로 기억되는데 교통사고 사망의 위험이 있어 다급하게 출동했다. 순찰차를 몰고 가 살펴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에 만취되어 자고 있었다. 아찔했다. 하마터면 교통사고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파출소로 옮겨 놓고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놀란 부모님이 파출소로 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술에 취한 아들이 귀가하지 않아 얼마나 걱정을 하며 기다렸겠는가? 지구대로 달려온 모친은 추운 날씨에 아들이 술 취해 아무 데나 자다가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다고 한숨 쉬며 이야기했다. 모친의 행복한 저녁 시간을 아들이 파괴한 것이다.

술 취한 가장 걱정에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이 파괴된 사례를 들면 내가 성서경찰서로 부임하기 전 지난해 7월쯤 현풍파출소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술 취한 사람이 도로에 누워 있어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다급한 신고가 와서 황급히 출동한 적이 있다. 이면도로 커브지점에 70대 어르신이 만취된 상태로 누워 있었다. 현풍은 아직도 5일장이 열리는데 아마 장날이라고 나오셔서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도로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면도로 커브지역이라 여차하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정말 아찔했다. 주소를 물어봐도 욕설만 하고 횡설수설하고 있어서 난감한 상황에서 우선 파출소로 안전하게 옮겨서 다시 한 번 주소를 물어보았으나 욕설은 더욱 심해졌다. 20분가량 욕설 하면서 파출소 내에서 소란행위를 지속했다. 연세가 높은 분이라 주취 소란으로 단속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내를 가지고 달랬다.

그 후 얼마쯤 지났을까? 술이 조금 깼는지 잠잠해진 어르신께 다시 한 번 주소를 여쭤보니 파출소에서 약 10분 정도 거리의 주택에 살고 계셨다. 주소를 확인하고 영감님을 댁에 모셔다 드렸다. 댁에서 영감님을 기다리던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가 술만 취하면 아무 데서나 누워 주무시는데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면서 어머니와 마음을 졸이며 있었다"고 했다. 영감님이 안전하게 귀가하기까지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을 술에 취한 채 자기도 모르게 파괴한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술에 취해 관공서에서 소란행위나 난동행위로 공무원의 정당한 공무를 방해해 처벌받는 것은 공무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술 취한 가장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이 불안과 공포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모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가장이 술에 취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안함과 공포심에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한다면 자제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현장에 출동하여 술에 취하여 난동을 부리거나 관공서 등에서 주취소란 행위를 하는 가장들의 가족들에게 연락하면 하나같이 술 취한 가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듯 소중한 가족들이 근심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역시 가장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 경찰도 상습 주취소란 행위자나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뿐만 아니라 지역의 알코올 치료병원과 업무협약을 통하여 상습 주취자나 상습 가정폭력 행위자 등에 대한 알코올 중독 치료에 대한 상담과 치료비 할인 혜택 등으로 상습 주취자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와 주취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힘을 써 나갈 것이다. 이제 다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또는 가족 구성원들이 술에 취하여 자기 가정의 행복한 시간을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술에 취해 한 행위를 관대히 바라보는 비정상적인 관점을 더는 용납하면 안 된다고 본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하여 주취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예방을 위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어 '행복한 시간의 파괴자'란 단어를 없애도록 노력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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